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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生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스물세 살에 쓴 단편소설을 결말까지 요약함.
- 무대는 천 년 전 교토의 남쪽 대문 라쇼몽임.
- 몇 해째 지진과 회오리바람과 불과 굶주림이 이어져 교토는 한없이 쇠락해 있었음.
- 사람들은 불상을 부숴 금박이 붙은 나무를 길가에 쌓아 놓고 땔감으로 팔았음.
- 그러니 대문을 고치려는 사람도 없었음.
- 무너져 가는 문에는 여우와 도둑이 살기 시작했음.
- 나중에는 거둘 사람 없는 시체를 문 위층에 갖다 버리는 버릇까지 생겼음.
- 해가 지면 아무도 그 근처에 가지 않았음.
- 어느 저녁, 비가 쏟아지는 그 문 아래에 하인 하나가 앉아 있었음.
- 오래 모신 주인에게서 며칠 전 쫓겨난 참이었음.
- 작가는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고 썼다가 고쳐 말함.
- 비가 그쳐도 갈 곳이 없으니 비에 갇혀 어쩔 줄 몰랐다고 해야 맞다는 것임.
- 하인의 오른쪽 볼에는 크게 곪은 여드름이 하나 있었음.
- 하인은 그 여드름을 만지작거리며 내일 먹고살 길을 궁리했음.
- 수단을 가리면 담 밑이나 길바닥에서 굶어 죽어 이 문 위에 개처럼 버려질 뿐임.
-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면 남는 길은 도둑이 되는 것 하나뿐임.
- 하인은 그 결론까지는 갔지만 그걸 받아들일 용기는 나지 않았음.
- 날이 추워지자 하인은 하룻밤 잘 곳을 찾아 문 위층으로 오르는 사다리에 발을 올렸음.
- 위에 있는 건 어차피 시체뿐일 거라고 생각했음.
- 그런데 사다리 중간쯤에서 보니 위층에 누군가 불을 켜 들고 움직이고 있었음.
- 하인은 도마뱀처럼 소리를 죽이고 기어올라 안을 들여다봤음.
- 시체 여럿이 흙으로 빚은 인형처럼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 있었음.
- 그 사이에 원숭이 같은 백발의 노파가 웅크리고 있었음.
- 노파는 관솔불을 꽂아 두고 여자 시체의 긴 머리카락을 한 올씩 뽑기 시작했음.
- 어미 원숭이가 새끼의 이를 잡는 손길이었다고 작가는 적었음.
- 그 모습을 보자 하인의 두려움이 가시고 모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타올랐음.
- 이때 누가 굶어 죽을 거냐 도둑이 될 거냐 물었다면 하인은 망설임 없이 굶어 죽겠다고 했을 거라고 함.
- 바로 조금 전까지 자기가 도둑이 될 생각이었다는 건 이미 잊은 뒤였음.
- 하인은 칼을 쥐고 뛰어올라 달아나려는 노파를 붙잡아 넘어뜨렸음.
- 노파의 팔은 닭발처럼 뼈와 가죽뿐이었음.
- 칼끝을 들이대도 노파가 말이 없자 하인은 이 노파의 목숨이 자기 손에 달렸다는 걸 깨달았음.
- 그러자 증오는 식고 일을 잘 마쳤을 때 같은 뿌듯함만 남았음.
- 하인이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묻자 노파는 까마귀 같은 목소리로 답했음.
- "이 머리카락을 뽑아서 가발을 만들려고 했지."
- 너무 평범한 대답에 하인은 실망했고 경멸이 다시 차올랐음.
- 그걸 눈치챈 노파가 변명을 늘어놓음.
- 이 여자는 살아서 뱀을 네 치씩 토막 내 말린 걸 말린 생선이라 속여 궁궐 경비 무사들에게 팔았음.
- 맛이 좋다고 무사들이 반찬거리로 빠짐없이 사 갔다고 함.
- 노파는 그 여자가 나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음.
- 안 하면 굶어 죽으니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는 것임.
- 그러니 굶지 않으려고 머리카락을 뽑는 자기도 그 여자가 너그러이 봐줄 거라는 논리였음.
- 하인은 여드름을 만지작거리며 그 말을 차갑게 듣고 있었음.
- 그런데 듣는 동안 문 아래에서는 없던 용기가 생겨났음.
- 노파를 붙잡을 때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용기였음.
- 이제 굶어 죽는다는 생각은 아예 머릿속에서 밀려나 있었음.
- "정말 그렇단 말이지?" 하고 다짐을 받은 하인이 여드름에서 손을 떼고 노파의 멱살을 잡았음.
- "그럼 내가 네 옷을 벗겨 가도 원망하지 마라. 나도 그러지 않으면 굶어 죽을 몸이니까."
- 하인은 노파의 옷을 벗겨 옆구리에 끼고 매달리는 노파를 시체 위로 걷어찼음.
- 그리고 순식간에 사다리를 내려가 밤 속으로 사라졌음.
- 한참 뒤 벌거벗은 노파가 사다리 입구까지 기어가 문 아래를 내려다봤음.
- 바깥에는 시커먼 밤만 있었음.
-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하인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임.
✍️ 편집자 덧붙임 (2026.10 확인)
- 실제 라쇼몽(본래 이름은 라조몬)은 지금 남아 있지 않음.
- 교토시에 따르면 794년 헤이안쿄로 도읍을 옮길 때 주작대로 남쪽 끝에 세운 정문이었음.
- 980년 비바람에 무너진 뒤 다시 세우지 않았음.
- 지금은 교토 미나미구의 작은 어린이공원에 1895년 세운 '라조몬 터' 비석 하나만 남아 있음.
- 교토역 앞에는 10분의 1 크기로 복원한 모형이 서 있음.
- 이야기의 뼈대는 12세기 설화집 『곤자쿠 이야기』에서 왔음.
- 29권에 문 위층에서 노파의 옷을 벗겨 간 도둑 이야기가 있고 31권에 뱀을 말린 생선이라 속여 판 여자 이야기가 따로 실려 있음.
- 아쿠타가와는 두 이야기를 엮고 하인의 마음이 뒤집히는 과정을 더해 소설로 만들었음.
- 1915년 11월 문예지 『제국문학』에 처음 실렸을 때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음.
- 처음 실린 판의 마지막 문장은 하인이 비를 무릅쓰고 교토 거리로 강도질을 하러 서둘러 가고 있었다는 것이었음.
- 1917년 첫 단편집에서 한 번 고쳤고 1918년 단편집 『코』에 실으며 지금의 "하인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가 됐음.
- 아쿠타가와는 이듬해 1916년 단편 「코」로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칭찬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음.
- 그는 1927년 서른다섯 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
- 1935년 친구 기쿠치 간(菊池寛)이 그의 이름을 딴 아쿠타가와상을 만들었고 지금도 일본에서 가장 이름난 신인 문학상으로 꼽힘.
-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의 영화 「라쇼몽」(1950)은 제목과 무대만 이 소설에서 가져왔음.
- 줄거리는 같은 작가의 다른 단편 「덤불 속」에서 왔음.
- 한 살인 사건을 도적과 아내와 무당의 입을 빌린 죽은 남편이 저마다 다르게 말하는 이야기임.
- 이 영화는 1951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음.
- 여기서 같은 일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하고 말한다는 뜻의 '라쇼몽 효과'라는 말이 나왔음.
- 『라쇼몽』이 나오고 2년 뒤인 1917년 한국에서는 이광수의 『무정』이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했음.
- 『무정』은 한국 첫 근대 장편소설로 꼽힘.
-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돼 원문은 저작권이 끝났고 일본의 무료 전자도서관 아오조라 문고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음.
🍿 여담
- 하인은 소설 내내 오른쪽 볼의 여드름을 만지작거림.
- 망설일 때도 노파의 변명을 들을 때도 손이 여드름에 가 있음.
- 그런데 노파의 옷을 벗기기로 마음먹은 순간 처음으로 여드름에서 손을 떼고 멱살을 잡음.
- 작가는 비 오는 저녁 하인의 처량한 기분을 굳이 프랑스어 'Sentimentalisme'(감상, 센티해진 기분)으로 적었음.
- 천 년 전 교토 하인의 이야기 한가운데 들어 있는 서양 말이라 원문을 읽다 보면 눈에 걸리는 대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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