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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가게 배달원이던 정주영이 돈을 모은 방법과, 손해를 봐도 스스로 손들기 전엔 실패가 아니라는 생각을 그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음(각 강연·대담의 날짜는 영상에 나오지 않음).
- 서울에 올라온 정주영은 쌀가게에서 쌀을 배달하며 법률 공부를 했음.
- 이광수의 소설 『흙』의 주인공처럼 변호사가 돼 없는 사람을 돕고 싶었다고 함.
- 살림은 셋방에서 시작했음.
- 땔감을 아끼려고 저녁에 한 번만 밥을 지어 다음 날 아침까지 먹었다고 함.
- 전차 삯도 아끼려고 전차를 한 번도 타지 않고 걸어 다녔음.
- 신발 바닥에는 가죽을 덧대 오래 신었다고 함.
- 지금도 현대 직원들에게 집을 살 때까지는 텔레비전 대신 라디오면 충분하다고 권한다고 함.
- 다방에서 차를 마실 돈이면 배고플 때 우동을 사 먹으라는 말도 덧붙임.
- 그렇게 작은 전세에서 큰 전세로 옮겨 가며 모은 돈으로 서대문형무소 맞은편 현저동 꼭대기의 초가집을 처음 샀음.
- 판을 바꾼 건 조선소였음.
- 배를 지을 돈을 빌리려 하자 영국 쪽은 배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현대에 주문한 사람이 있다는 증명부터 가져오라고 했음.
- 정주영은 처지를 바꿔 보면 이치에 꼭 맞는 말이었다고 돌아봄.
- 그가 그리스 선주 리바노스에게 들고 간 건 5만 분의 1 지도와 조선소를 지을 백사장 사진뿐이었음.
- 배를 사 주면 그 증명으로 영국에서 차관, 곧 나라 밖에서 빌리는 돈을 얻어 조선소를 짓고 배를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이었음.
- 리바노스는 26만 톤급 유조선 두 척을 주문했음.
- 계약금과 계약서를 들고 가자 영국 정부도 차관을 승인했다고 함.
- 그는 기업에는 어려움이 없다고 말함.
- 정말 어려운 건 부하와 자기 목숨이 걸린 전쟁뿐이라는 것임.
- 기업은 아무리 밤을 새워 일해도 사람이 죽어 나가지는 않으니, 오늘 못 푼 일은 내일 다시 생각해 풀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임.
- 실패도 스스로 손을 들어야 실패라고 봄.
- 손해를 보거나 파산을 해도 본인이 실패했다고 인정하기 전까지는 실패가 아니라는 것임.
- 앞서 가는 선진국을 뒤에서 쫓아갈 필요 없이, 그들이 가는 지점에 함께 올라타면 된다고도 함.
- 88 서울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일본을 이긴 일은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면 무엇이든 이룬다는 교훈을 다시 확인한 일이었다고 함.
- 올림픽이 빚만 남기는 게 아니라 적어도 1억 달러는 남길 거라고 내다봤음.
- 젊은이들에게는 큰 기업을 이끌고 싶다면 먼저 애국심을 세우라고 당부함.
- 애국심 없이 요령과 재주, 나쁜 결탁으로 한번 두각을 나타내려는 사람은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 수 없다는 것임.
- 반도체도 생산은 이미 선진국 수준이니 개발 기술만 키우면 세계 최상위에 오를 거라고 봤음. (실제로 현대그룹이 1983년 세운 현대전자는 하이닉스를 거쳐 2012년 SK하이닉스가 됐고, 2025년 1분기에는 D램 매출 점유율 36%로 세계 1위에 올랐음.)
✍️ 편집자 덧붙임 (2026.09 확인)
- 정주영이 쌀가게 복흥상회에 배달원으로 들어간 건 19살이던 1934년이었음.
- 3년쯤 뒤 가게를 접으려던 주인은 성실한 정주영에게 가게를 넘겼다고 전해짐.
- 그는 1938년 1월 가게 이름을 경일상회로 바꿔 학교 기숙사에 쌀을 댔음.
- 하지만 1939년 일제가 쌀 배급제를 시행하면서 경일상회는 문을 닫았음.
- 처음에 바클레이즈 은행은 현대의 조선 능력을 믿지 못해 거절했다고 보도됨.
- 정주영은 영국 조선 자문 회사 A&P 애플도어의 롱바텀 회장을 찾아가 500원 지폐 속 거북선을 보여 줬다는 일화가 널리 전해짐.
-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든 나라라며 조선소만 지으면 해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는 것임.
- 차관은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이 빌려주고 영국 정부 기관인 수출신용보증국이 보증을 서는 방식이었음.
- 영상 속 "영국 정부의 승인"은 이 보증을 가리킴.
- 리바노스의 주문은 1971년이었고, 영국 법원 기록에는 1호선을 짓는 계약이 1972년 4월 10일로 적혀 있음.
- 계약금은 보도에 따르면 우리 돈 약 14억 원이었음.
- 울산조선소는 1972년 3월 23일 기공식을 했음.
- 1974년 6월 28일에는 조선소 준공식과 1·2호선 명명식을 한날 치렀음.
- 조선소를 짓는 동시에 첫 배를 만든 셈임.
- 1호선 애틀랜틱 배런은 1974년 11월 27일 리바노스의 해운사에 넘겨졌음.
- 인연은 대를 이어 2016년 조지 리바노스의 아들 스타브로스 리바노스가 현대중공업에서 새로 주문한 유조선 두 척의 명명식을 치렀음.
- 서울은 1981년 9월 30일 서독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52 대 27로 일본 나고야를 이기고 올림픽을 따냈음.
- 정주영은 이 유치의 일등 공신으로 꼽힘.
- 정주영은 2001년 3월 21일 만 85세로 세상을 떠났음.
- 1986년 NHK 다큐에서도 정주영은 사업가로 성공했다고 아직 하루도 안심하고 살지 않는다고 말했음. 비슷한 글 이병철·정주영 1986년 NHK 인터뷰 (한국·재벌 총수의 맨얼굴)
🍿 여담
- 정주영이 처음 산 현저동 초가집은 산꼭대기 가장 높은 곳에 있었음.
-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오면 첫째 집이 될지도 모른다고 농담했음.
- 담배도 피우지 않았는데, 그때는 연기로 돈을 날리는 게 아까워서였다고 함.
- 지금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건강에 나빠서 안 피운다고 웃으며 덧붙였음.
- 배를 짓는 사이 1973년 달러 가치가 떨어지자 현대는 배값을 10% 올려 주지 않으면 배를 넘기지 않겠다고 했음.
- 리바노스 쪽은 이 배를 석유회사 셸에 빌려주기로 한 계약을 놓칠까 봐 일단 돈을 더 냈음.
- 배를 받은 뒤에는 협박에 못 이겨 낸 돈이라며 영국 법정에 돌려 달라고 소송을 냈음.
- 1978년 영국 법원은 경제적 강박이라는 개념은 인정하면서도, 8개월 넘게 문제 삼지 않았으니 인상에 동의한 셈이라며 현대의 손을 들어 줬음.
- 이 사건은 영국 계약법에서 경제적 강박을 다룬 대표 판례로 꼽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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