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주2026-09-30인물국내 0 19
목차 · 3개 칸

쌀가게 배달원이던 정주영이 돈을 모은 방법과, 손해를 봐도 스스로 손들기 전엔 실패가 아니라는 생각을 그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음(각 강연·대담의 날짜는 영상에 나오지 않음).

  1. 서울에 올라온 정주영은 쌀가게에서 쌀을 배달하며 법률 공부를 했음.
  2. 이광수의 소설 『흙』의 주인공처럼 변호사가 돼 없는 사람을 돕고 싶었다고 함.
  3. 살림은 셋방에서 시작했음.
  4. 땔감을 아끼려고 저녁에 한 번만 밥을 지어 다음 날 아침까지 먹었다고 함.
  5. 전차 삯도 아끼려고 전차를 한 번도 타지 않고 걸어 다녔음.
  6. 신발 바닥에는 가죽을 덧대 오래 신었다고 함.
  7. 지금도 현대 직원들에게 집을 살 때까지는 텔레비전 대신 라디오면 충분하다고 권한다고 함.
  8. 다방에서 차를 마실 돈이면 배고플 때 우동을 사 먹으라는 말도 덧붙임.
  9. 그렇게 작은 전세에서 큰 전세로 옮겨 가며 모은 돈으로 서대문형무소 맞은편 현저동 꼭대기의 초가집을 처음 샀음.
  10. 판을 바꾼 건 조선소였음.
  11. 배를 지을 돈을 빌리려 하자 영국 쪽은 배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현대에 주문한 사람이 있다는 증명부터 가져오라고 했음.
  12. 정주영은 처지를 바꿔 보면 이치에 꼭 맞는 말이었다고 돌아봄.
  13. 그가 그리스 선주 리바노스에게 들고 간 건 5만 분의 1 지도와 조선소를 지을 백사장 사진뿐이었음.
  14. 배를 사 주면 그 증명으로 영국에서 차관, 곧 나라 밖에서 빌리는 돈을 얻어 조선소를 짓고 배를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이었음.
  15. 리바노스는 26만 톤급 유조선 두 척을 주문했음.
  16. 계약금과 계약서를 들고 가자 영국 정부도 차관을 승인했다고 함.
  17. 그는 기업에는 어려움이 없다고 말함.
  18. 정말 어려운 건 부하와 자기 목숨이 걸린 전쟁뿐이라는 것임.
  19. 기업은 아무리 밤을 새워 일해도 사람이 죽어 나가지는 않으니, 오늘 못 푼 일은 내일 다시 생각해 풀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임.
  20. 실패도 스스로 손을 들어야 실패라고 봄.
  21. 손해를 보거나 파산을 해도 본인이 실패했다고 인정하기 전까지는 실패가 아니라는 것임.
  22. 앞서 가는 선진국을 뒤에서 쫓아갈 필요 없이, 그들이 가는 지점에 함께 올라타면 된다고도 함.
  23. 88 서울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일본을 이긴 일은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면 무엇이든 이룬다는 교훈을 다시 확인한 일이었다고 함.
  24. 올림픽이 빚만 남기는 게 아니라 적어도 1억 달러는 남길 거라고 내다봤음.
  25. 젊은이들에게는 큰 기업을 이끌고 싶다면 먼저 애국심을 세우라고 당부함.
  26. 애국심 없이 요령과 재주, 나쁜 결탁으로 한번 두각을 나타내려는 사람은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 수 없다는 것임.
  27. 반도체도 생산은 이미 선진국 수준이니 개발 기술만 키우면 세계 최상위에 오를 거라고 봤음. (실제로 현대그룹이 1983년 세운 현대전자는 하이닉스를 거쳐 2012년 SK하이닉스가 됐고, 2025년 1분기에는 D램 매출 점유율 36%로 세계 1위에 올랐음.)

✍️ 편집자 덧붙임 (2026.09 확인)

  1. 정주영이 쌀가게 복흥상회에 배달원으로 들어간 건 19살이던 1934년이었음.
  2. 3년쯤 뒤 가게를 접으려던 주인은 성실한 정주영에게 가게를 넘겼다고 전해짐.
  3. 그는 1938년 1월 가게 이름을 경일상회로 바꿔 학교 기숙사에 쌀을 댔음.
  4. 하지만 1939년 일제가 쌀 배급제를 시행하면서 경일상회는 문을 닫았음.
  5. 처음에 바클레이즈 은행은 현대의 조선 능력을 믿지 못해 거절했다고 보도됨.
  6. 정주영은 영국 조선 자문 회사 A&P 애플도어의 롱바텀 회장을 찾아가 500원 지폐 속 거북선을 보여 줬다는 일화가 널리 전해짐.
  7.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든 나라라며 조선소만 지으면 해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는 것임.
  8. 차관은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이 빌려주고 영국 정부 기관인 수출신용보증국이 보증을 서는 방식이었음.
  9. 영상 속 "영국 정부의 승인"은 이 보증을 가리킴.
  10. 리바노스의 주문은 1971년이었고, 영국 법원 기록에는 1호선을 짓는 계약이 1972년 4월 10일로 적혀 있음.
  11. 계약금은 보도에 따르면 우리 돈 약 14억 원이었음.
  12. 울산조선소는 1972년 3월 23일 기공식을 했음.
  13. 1974년 6월 28일에는 조선소 준공식과 1·2호선 명명식을 한날 치렀음.
  14. 조선소를 짓는 동시에 첫 배를 만든 셈임.
  15. 1호선 애틀랜틱 배런은 1974년 11월 27일 리바노스의 해운사에 넘겨졌음.
  16. 인연은 대를 이어 2016년 조지 리바노스의 아들 스타브로스 리바노스가 현대중공업에서 새로 주문한 유조선 두 척의 명명식을 치렀음.
  17. 서울은 1981년 9월 30일 서독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52 대 27로 일본 나고야를 이기고 올림픽을 따냈음.
  18. 정주영은 이 유치의 일등 공신으로 꼽힘.
  19. 정주영은 2001년 3월 21일 만 85세로 세상을 떠났음.
  20. 1986년 NHK 다큐에서도 정주영은 사업가로 성공했다고 아직 하루도 안심하고 살지 않는다고 말했음. 비슷한 글 이병철·정주영 1986년 NHK 인터뷰 (한국·재벌 총수의 맨얼굴)

🍿 여담

  1. 정주영이 처음 산 현저동 초가집은 산꼭대기 가장 높은 곳에 있었음.
  2.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오면 첫째 집이 될지도 모른다고 농담했음.
  3. 담배도 피우지 않았는데, 그때는 연기로 돈을 날리는 게 아까워서였다고 함.
  4. 지금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건강에 나빠서 안 피운다고 웃으며 덧붙였음.
  5. 배를 짓는 사이 1973년 달러 가치가 떨어지자 현대는 배값을 10% 올려 주지 않으면 배를 넘기지 않겠다고 했음.
  6. 리바노스 쪽은 이 배를 석유회사 셸에 빌려주기로 한 계약을 놓칠까 봐 일단 돈을 더 냈음.
  7. 배를 받은 뒤에는 협박에 못 이겨 낸 돈이라며 영국 법정에 돌려 달라고 소송을 냈음.
  8. 1978년 영국 법원은 경제적 강박이라는 개념은 인정하면서도, 8개월 넘게 문제 삼지 않았으니 인상에 동의한 셈이라며 현대의 손을 들어 줬음.
  9. 이 사건은 영국 계약법에서 경제적 강박을 다룬 대표 판례로 꼽힘.

로그인하면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

이런 글 어때요?

  1. 0
  2. 0
  3. 0
  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