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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 부모 빚을 갚고 맨손으로 떠난 아역 배우가 난타로 1,600만 관객을 모으기까지
목차 · 5개 칸
- 송승환이 가진 난타 제작사 PMC프러덕션 지분은 2025년 말 감사보고서 기준 24.05%임.
- 회사 장부의 순자산으로 따지면 그 몫은 약 178억 원으로 추산됨.
- 들고 시작한 건 돈이 아니라 부모 빚을 다 갚고 남은 빈손과 여덟 살부터 쌓은 방송 경력이었음.
- 시작은 1965년 동화구연대회였음.
- 국민학교 3학년이던 그가 대회에서 1등을 하자 KBS 라디오 PD가 '은방울과 차돌이'의 차돌이 역을 맡겼다고 2025년 6월 한 공연 유튜브 채널에서 말했음.
- 출연료는 회당 100원이었고, 어린이날 특집 MC는 돈 대신 학용품으로 받았다고 함.
- 2021년 12월 자기 유튜브 채널에서는 텔레비전에 나오는데 정작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었다고 말했음.
- 그런데 집이 여러 번 망했음.
- 중학교 2, 3학년 무렵부터 집안이 기울어 버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는 소년 가장이 됐다고 함.
- 80년대에는 '젊음의 행진' MC와 광고 모델로 돈이 잘 들어왔지만 버는 족족 집안 빚에 들어갔다고 말했음.
- 2024년 KBS '같이 삽시다'에서는 조선호텔 디스코텍 DJ로 석 달 번 돈이 아파트 한 채 값이었는데 그 돈도 부모 빚 갚는 데 썼다고 했음.
- 젊어서 장만한 아파트까지 빚쟁이에게 넘어가고 나니 그렇게 번 돈이 하나도 남지 않아 허탈했다고 함.
- 2020년 TV조선 '마이웨이'에서 그는 자기가 진 빚은 아니지만 다 갚아 드리고 몇천 달러만 들고 미국에 갔다고 말했음.
- 1985년의 일이었음.
- 뉴욕에서는 브로드웨이 한국 도매상에서 시계를 사다 벼룩시장에서 팔았고, 한인 방송국에서 DJ 아르바이트를 했음.
- 아내는 네일숍에서 일했다고 함.
- 조금 더 벌면 연극과 뮤지컬을 봤음.
- 대본이 있어야 연극인 줄 알았는데 말 없이 몸으로 하는 퍼포먼스를 뉴욕에서 처음 봤다고 했음.
- 1988년 돌아올 때 3년 6개월 동안 모은 돈은 약 400만 원이었다고 함.
- 신반포 17평 월세 아파트 보증금 500만 원에도 못 미치는 돈이었음.
- 그래서 그 돈으로 아내와 유럽 배낭여행을 하고 맨손으로 들어왔다고 함.
- 보증금은 귀국 다음 날 영화를 계약하고 받은 계약금으로 냈다고 함.
- 그 뒤로 이름 끝 글자를 딴 제작사 '환 퍼포먼스'를 세웠음.
- 연극은 돈이 안 돼 처음에는 변진섭·이승환 같은 가수의 콘서트를 만들었고, 강수지의 음반이 크게 팔리며 회사에 여유가 생겼다고 함.
- 그 돈으로 하고 싶던 뮤지컬을 올리다가 1996년 12월 자본금 2억 원으로 주식회사 PMC를 세웠음.
- 그런데 첫 세 작품으로 자본금을 다 까먹었다고 2007년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했음.
- 그래서 생각한 게 해외였음.
- 연극 제작은 늘 적자였고 친구들도 초대권만 달라던 시절이라 관객을 많이 만나려면 나라 밖으로 나가야 했다고 함.
- 외국인은 한국말을 못 알아들으니 말이 필요 없는 공연이어야 했음.
- 2014년 YTN 인터뷰에서는 브로드웨이 제작자보다 돈은 없어도 한국적인 건 자기가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음.
- 사물놀이 장단을 쓰려니 두드릴 게 가장 많은 곳이 주방이었다고 함.
- 네 번째 작품 난타는 파트너가 개인 돈을 넣어 만들었음.
- 1997년 10월 10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처음 막을 올렸음.
-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매출은 4억 9,000만 원, 순손실도 4억 9,000만 원이었음.
- 처음 3년은 대표인데도 월급을 못 가져갈 만큼 어려웠다고 함.
- 1998년 초 녹화 테이프를 들고 뉴욕·런던·도쿄로 팔러 다녔지만 한국에서도 연극을 하느냐는 말만 들었다고 함.
- 판을 바꾼 건 1999년 8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었음.
- 초청받아 가는 게 아니라 제 돈 들여 가는 자리라 30만 달러, 당시 돈 약 3억 원이 들었다고 함.
- 파트너가 마련하고도 1억 원이 모자랐음.
- 그때 고등학교 친구가 자기 집을 담보로 1억 원을 빌려줬다고 2021년 자기 채널에서 말했음.
- 공연은 한 달 내내 매진이었고, 그 사이 미국 디즈니월드 한 달 계약과 유럽 투어 제안이 들어왔다고 함.
- 친구 빚은 돌아오자마자 갚았다고 함.
- 이듬해인 2000년 7월에는 서울 정동에 1년 내내 난타만 올리는 전용 극장을 열었음.
- 감사보고서로 보면 1999년까지 회사는 자본이 마이너스였음.
- 2000년 매출 38억 원에 순이익 10억 7,000만 원을 내며 처음 크게 남겼음.
- 그리고 2001년 벤처캐피털이 들어왔음.
- 2001년 10월 기보캐피탈 등 투자기관 6곳이 액면가의 10배인 주당 5,000원에 투자했다고 공시에 적혀 있음.
- 조건이 붙은 돈이었음.
- 2003년 3월까지 코스닥 예비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2002년 순이익이 18억 8,000만 원에 못 미치면 회사와 대주주가 주당 6,000원에 되사 주기로 했음.
- 2002년 순이익은 11억 9,000만 원이었고 상장도 이뤄지지 않았음.
- 그래서 2003년 투자기관 몫 20만 주를 주당 5,300원에 사들여 없앴고, 나머지 기관에는 주당 1,060원의 위약금을 주고 기한을 2006년까지 미뤘음.
- PMC는 지금까지 비상장 회사임.
- 그 무렵 난타는 미국으로 갔음.
- 2003년 9월 뉴욕 42번가 뉴 빅토리 극장에서 공연했는데, 극장의 새 예술감독이 4년 전 에든버러에서 난타를 본 사람이었다고 함.
- 회사는 브로드웨이 전용관을 위해 미국 자회사에 36만 달러를 넣었음.
- 2004년 2월 뉴욕 미네타 레인 극장에서 문을 연 전용관은 2005년 8월까지 638회 공연에 14만 8,532명이 봤다고 난타 공식 연혁에 적혀 있음.
- 미국 자회사는 손실을 내다가 2008년 청산됐음.
- 돈을 번 곳은 서울이었음.
- 정동·강남·명동·홍대·충정로로 전용관이 늘었고, 극장마다 같은 공연을 하루 몇 번씩 올렸음.
- 매출은 2005년 211억 원, 2010년 327억 원을 거쳐 2012년 414억 원으로 정점을 찍었음.
- 관객 대부분은 아시아 관광객이었음.
- 2017년 사드 배치 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끊기자 충정로 전용관이 문을 닫았고, 그해 회사는 14억 1,000만 원의 순손실을 냈음.
- 같은 해 제주에 공연장과 객실을 함께 갖춘 '호텔난타'를 열었음.
- 감사보고서에 적힌 객실은 209개였고, 호텔을 짓던 2017년 말 신한은행 장기 차입금은 148억 원까지 늘었음.
- 그 사이 그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았음.
- 2015년 7월 맡아 2018년 2월까지 거의 매일 회의를 했다고 함.
- 2021년 자기 채널에서 그는 잘못되면 혼자 덤터기를 쓸 위험이 너무 컸고 예산도 너무 적었다고 말했음.
- 2016년 8월에는 개·폐회식 연출을 맡았던 정구호 디자이너가 송승환과의 갈등으로 물러났다는 보도가 나왔고, 송승환은 갈등을 부인했음.
- 그리고 올림픽이 끝나자 눈이 나빠졌음.
- 2026년 1월 MBN에 나와서는 쉬러 간 방콕에서 메뉴판 글씨가 안 보여 안경 도수 문제인 줄 알았다고 말했음.
- 병명은 망막색소변성증이었고, 6개월 사이 시력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함.
- 미국까지 찾아갔지만 치료법이 없다는 말을 들었음.
- 그날 밤 혼자 한 번 크게 울고, 다음 날 아침 파란 하늘이 보이는 게 고마워 안 보여도 일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고 함.
- 지금은 1~2m 밖이 안개 속처럼 형체만 보인다고 2021년 SBS 인터뷰에서 말했음.
- 다음 위기는 코로나였음.
- 2020년 2월 모든 공연이 멈췄고, 명동 극장이 다시 열린 건 21개월 뒤인 2021년 12월 2일이었음.
- 그 사이 배우들은 물류센터 일과 대리운전으로 버텼다고 함.
- 방콕과 광저우의 해외 전용관도 이때 문을 닫았음.
- 공연 수입은 2019년 148억 원에서 2020년 16억 원, 2021년 11억 원으로 줄었음.
- 버틴 건 호텔이었음.
- 같은 기간 호텔 수입은 2020년 34억 원, 2021년 52억 원으로 공연보다 많았음.
- 회사 순손실은 2020년 31억 1,000만 원, 2021년 13억 9,000만 원이었음.
- 본인은 2024년 5월 이데일리 인터뷰에서 팬데믹 때 100억 원 정도 적자가 났지만 공연을 다시 열어 다 메웠다고 말했음.
- 감사보고서의 순손실과는 차이가 있는데, 본인이 어떤 기준으로 셌는지는 밝히지 않았음.
- 그 무렵 그는 유튜브를 시작했음.
- 극장이 다 닫혀 배우·스태프와 밥을 먹다가 유튜브를 권유받았다고 2026년 1월 이금희의 유튜브 채널에서 말했음.
- 어릴 때부터 MC를 했으니 인터뷰를 하기로 했고, 분장실에서 듣던 원로 배우들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고 함.
- '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의 첫 영상은 2020년 11월 4일 올라왔음.
- 처음 구독자는 20~30명이었다고 함.
- 2026년 10월 16일 기준 구독자는 약 34만 7,000명, 영상은 쇼츠를 합쳐 1,608편, 누적 조회는 1억 6,656만 회임.
- 그리고 난타는 돌아왔음.
- 공연 수입은 2023년 104억 원, 2025년 154억 원으로 회복했고, 2025년 회사 매출은 227억 원, 순이익은 36억 7,000만 원이었음.
- 2023년 말에는 은행 빚을 다 갚았음.
- 2026년 10월 누적 관객은 1,600만 명을 넘었고, 그때까지 61개국 327개 도시에서 공연했다고 보도됨.
- 지분은 처음부터 한 사람 몫이 아니었음.
- 2001년 말 주주 명부에는 함께 대표를 맡던 이광호와 송승환이 22.22%씩으로 올라 있음.
- 2015년 회사는 제주 법인을 합쳤고, 그 뒤로는 계열사 피엠씨네트웍스가 24.29%로 최대주주가 됐음.
- 피엠씨네트웍스의 주주가 누구인지는 감사보고서에 나오지 않음.
- 등기상 대표이사는 2012년부터 다른 사람이 맡고 있고, 송승환은 예술총감독으로 불림.
- 그럼 송승환의 보유 지분 가치를 추산해봄.
- 2025년 말 감사보고서에 송승환은 전체 631만 4,000주 가운데 151만 8,210주(24.05%)를 가진 것으로 적혀 있음.
- PMC는 상장하지 않았고 최근 투자 단가도 공시되지 않아 순자산으로 셈함.
- 2025년 말 순자산은 740억 6,000만 원이고, 24.05%를 곱하면 약 178억 원임.
- 다만 이 순자산에는 2025년 토지·건물을 감정평가로 다시 매기며 늘어난 245억 원이 들어 있음.
- 다시 매기기 전 값으로 보면 그의 몫은 약 120억 원임.
- 배당도 받음.
- 2024년 회사가 실제로 준 배당은 9억 4,710만 원이었고, 나눠 보면 주당 150원이라 송승환 몫은 약 2억 3,000만 원임.
- 2025년 몫으로는 주당 250원을 주기로 해 송승환 몫은 약 3억 8,000만 원임.
- 비상장 주식은 사 줄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아 실제로 팔 때 값은 이보다 낮을 수 있음.
PMC프러덕션 숫자로 보기 (감사보고서, 억 원)
| 연도 | 매출 | 공연 수입 | 호텔 수입 | 영업이익 | 순이익 |
|---|---|---|---|---|---|
| 1997 | 4.9 | - | - | -4.2 | -4.9 |
| 2000 | 38.3 | - | - | 12.2 | 10.7 |
| 2005 | 211.2 | - | - | 43.9 | 27.8 |
| 2012 | 413.7 | - | - | 61.4 | 42.4 |
| 2017 | 181.9 | 147.7 | 32.3 | -4.6 | -14.1 |
| 2019 | 208.1 | 147.5 | 58.5 | 33.5 | 23.6 |
| 2020 | 51.2 | 15.9 | 34.4 | -34.9 | -31.1 |
| 2021 | 62.9 | 10.5 | 52.0 | -17.2 | -13.9 |
| 2023 | 170.8 | 103.8 | 65.9 | 38.4 | 31.5 |
| 2025 | 227.0 | 154.3 | 71.1 | 40.2 | 36.7 |
출처는 PMC프러덕션 감사보고서·등록법인신청서(DART)임. 1997·2000년은 등록법인신청서의 요약 숫자이고, 공연·호텔 수입은 2017년부터 따로 적혀 있음.
🍿 여담
- 그의 첫 제작은 1978년 서울 신촌 76소극장의 뮤지컬 'LUV'였음.
- 제작비 일부는 배우 김자옥에게 빌렸고 공연은 매진이었다고 함.
- 그런데 가장 큰 예매처였던 종로서적에 표값을 받으러 간 단원이 웃으며 나간 뒤 45년째 돌아오지 않았다고 2025년 말했음.
- 첫 제작은 적자였고, 김자옥에게 빌린 돈은 약속보다 늦게 갚았다고 함.
- 같은 공연에서는 배우가 물에 빠지는 장면을 만들려고 무대 뒤 콘크리트 바닥을 1m 팠고, 여름이라 쉬는 시간에 관객에게 아이스케키 100개를 돌렸다고 함.
- 본인은 1978년 'LUV'에서 망하고 1997년 난타가 나오기까지 20년이 걸렸다고 말함.
- 난타 해외 공연 때는 9·11 직후 미국 공항에서 영어가 서툰 배우가 "I'm not terrorist"라고 말했다가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함.
- 러시아에서는 칼이 왜 이렇게 많으냐며 통관이 막혔다고 함.
- 2026년 MBN에서는 장학퀴즈 주장원이었다는 이야기가 잘못 퍼진 것이고 실제로는 5등이었다고 직접 바로잡았음.
- 시각장애 4급을 받은 직후 골프에서 홀인원을 했고, 방콕에서 한 번 더 했다고 같은 방송에서 말했음.
- 지금 무대에 설 때는 분장실 거울에 동선의 발걸음 수를 숫자로 적어 두고 외운다고 함.
💰 어떻게 벌었나
말 없는 공연 × 전용관 × 관광객
- 송승환이 파는 건 말을 몰라도 웃을 수 있는 90분짜리 주방 소동이고, 값은 서울과 제주를 찾은 관광객이 표를 사서 냄.
- 대사가 없어 나라마다 번역하거나 새로 만들 필요가 없으니 한 번 만든 공연이 29년째 같은 꼴로 팔리는 자산이 됨.
- 2025년 공연 수입 154억 원은 누적 1,600만 명이 본 공연이 아직도 해마다 벌어들이는 돈임.
- 1년 내내 한 작품만 올리는 전용관은 무대와 배우를 그대로 두고 같은 공연을 하루 몇 번씩 되풀이해, 관객이 늘어도 새 작품을 만드는 비용이 들지 않는 레버리지가 됨.
- 그래서 매출 414억 원을 낸 2012년 영업이익은 61억 원이었고, 2025년에는 매출 227억 원에 영업이익 40억 원을 냈음.
- 작품마다 연습하고 두세 달 올리고 내리는 보통 연극이라면 그가 만든 50편 중 절반 넘게 적자였다는 본인 말처럼 남기기 어려운 숫자임.
- 회사 가치는 비상장이라 순자산으로 셈하면 740억 원이고, 그중 송승환 몫은 약 178억 원으로 추산됨.
- 아쉬운 점은 관광객임.
- 손님 대부분이 해외 관광객이라 2017년 사드와 2020년 코로나처럼 나라 밖 사정 하나로 극장이 문을 닫았고, 공연이 멈춘 해에는 호텔이 회사를 받쳤음.
관련 링크
공시 25건, 본인 출연 영상 19건, 인터뷰·보도 30여 건을 확인해 정리함. 그중 직접 볼 만한 것만 모음.
- 난타 공식 사이트: 공연 연혁과 전용관 안내
- 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 (유튜브): 원로 배우를 인터뷰하는 본인 채널
- 송승환 4화, 에든버러 가는 돈 (원더풀라이프, 2021): 친구 집 담보 1억 원과 에든버러 이야기
- 송승환 6화, 소년 가장 (원더풀라이프, 2021): 집안 빚과 첫 제작 'LUV'
- 송승환 7화, 뉴욕 (원더풀라이프, 2021): 벼룩시장 시계 장사와 400만 원 들고 돌아온 이야기
- 송승환 9화, 평창 (원더풀라이프, 2021): 평창 개·폐회식 뒷이야기와 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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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MC프러덕션 감사보고서 2025 (DART): 매출·지분·토지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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