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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분데스리가 연봉을 한남동 건물로 바꾸기까지
목차 · 4개 칸
- 차범근이 아들 차두리와 반씩 가진 서울 한남동 이태원로 240 건물은 그의 몫만 약 190억 원어치로 추산됨.
- 2026년 1월 보도에 나온 인근 5층 건물의 호가 380억 원을 반으로 나눈 값임.
- 시작은 가난이었음.
- 2017년 에스콰이어 인터뷰에서 그는 너무 가난해서 축구 말고는 미래가 없었다고 말했음.
- 운동화는 몇 번 신으면 갈라졌는데 1년에 한 번 사기도 어려웠다고 함.
- 아버지는 좋은 땅을 팔고 싼 땅으로 옮겨 그 차액으로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 전학비를 대 줬다고 함.
- 그게 집에서 받은 마지막 지원이었다는 것임.
- 1978년 독일로 가기 직전 그의 재산은 아파트 한 채였음.
- 결혼할 때는 250만 원을 빌려 강남구청 앞 아파트에 전세로 살았고, 군 복무하는 사이 아내가 피아노를 가르쳐 번 돈으로 17평 아파트를 27평으로 늘려 놓았다고 함.
- 그는 그게 재산 전부였다고 말했음.
- 독일행을 민 사람도 아내였음.
- 아내는 이 아파트를 팔아 1년 동안 대 줄 테니 그 1년 안에 벤치 멤버에서 벗어나라고 했다고 함.
- 그때 국내에서는 가면 역적이라는 반대가 많았고, 국부 유출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함.
- 1978년 12월 그는 서독 다름슈타트에서 한 경기를 뛰고 군 복무 때문에 귀국했음.
- 그리고 1979년 7월 12일 프랑크푸르트와 입단 계약을 맺었음.
- 1980년 6월 인터뷰에 따르면 연봉은 1981년까지 24만 마르크(당시 약 6,312만 원)였음.
- 다른 선수들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고 함.
- 아내 오은미는 같은 인터뷰에서 보너스와 부수입이 따로 있지만 서독은 세금이 38~40%나 된다고 말했음.
- 세금만 아니면 한 해 1억 원쯤 될 거라는 게 아내의 계산이었음.
- 첫 시즌에 그는 46경기에서 15골을 넣었음.
- 1980년에는 프랑크푸르트가 UEFA컵에서 우승했음.
- 돈을 잃은 일도 있었음.
- 1988년 독일 일간지 타츠(taz)는 프랑크푸르트 부회장 첸커 시절의 '건축주 모델' 부동산 거래로 차범근 같은 외국인 선수들이 돈을 떼였다고 보도했음.
- 같은 기사는 그가 1988년에도 레버쿠젠에서 뛰며 그때 생긴 빚더미를 갚고 있다고 적었음.
- 1983년 그는 레버쿠젠으로 옮겼음.
- 두 구단의 공식 사이트는 프랑크푸르트가 재정난으로 이적료 수입이 필요해 선수를 팔아야 했다고 설명함.
- 그해 여름 휴가에서 돌아올 때까지 다음 팀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레버쿠젠 단장 칼문트가 공항에 마중 나와 호텔에서 계약을 매듭지었다고 함.
- 레버쿠젠에서는 구단 최고 연봉을 받았다고 보도됐음.
- 액수는 공개된 적이 없음.
- 1988년 UEFA컵 결승 2차전에서는 81분에 3-0을 만드는 골을 넣어 레버쿠젠의 우승을 이끌었음.
- 그는 그 골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골이라고 말했음.
- 1989년 은퇴할 때까지 분데스리가 308경기에서 98골을 넣었음.
- 308경기는 2020년 하세베 마코토가 깰 때까지 아시아 선수 최다 출전 기록이었음.
- 독일에서 번 돈은 한국 집으로 왔음.
- 아직 레버쿠젠에서 뛰던 1988년 서울 이촌동의 공급 82평 복층 아파트를 샀다고 보도됐음.
- 1989년에는 같은 동네의 공급 63평 아파트를 자기 이름으로 샀음.
- 82평 아파트는 2007년 막내 차세찌에게 증여했다고 보도됐음.
- 그는 가족이 독일에 남길 원했고 코치 제안도 있었지만 사명 때문에 돌아왔다고 말했음.
- 그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축구교실이었음.
-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차범근축구교실은 그가 아직 레버쿠젠에서 뛰던 1988년 국내 첫 방과 후 축구교실로 세워졌음.
- 공부와 축구를 함께 해야 한다는 유럽에서 얻은 생각이 출발점이었다고 함.
- 첫 기수에는 아들 차두리가 있었음.
- 축구교실은 돈을 버는 곳이 아니었음.
- 1997년 국유지였던 서울 이촌 축구장에 1억 2,000만 원을 들여 컨테이너 시설을 지었다고 보도됐음.
- 2005년에는 축구장 4면과 관리동을 지어 서울시에 기부했음.
- 2010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MBC에서 받은 해설료를 축구교실 훈련센터를 짓는 데 썼다고 말했음.
- 그해 SBS 해설을 맡으며 돈을 많이 주면 또 축구교실에 쓰겠다고 했음.
- 2010년쯤에는 연 1억 원에 가까운 한강공원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축구교실을 포기했다가 다시 입찰해 되찾았다고 함.
- 2016년 법률대리인은 그가 축구교실에서 어떤 명목의 돈도 받지 않는다고 밝혔음.
- 같은 해 논란도 있었음.
- MBC '시사매거진 2580'은 축구교실의 수강료가 주 1회 월 5만 원, 주 3회 월 12만~13만 원으로 서울시 기준(4만 원, 7만 원)보다 높았다고 보도했음.
- 서울시는 위약금을 물렸음.
- 자택 기사의 급여를 축구교실이 냈다는 지적도 나왔음.
- 법률대리인은 수강료 문제는 불찰과 잘못을 인정했고, 기사 급여는 2012년 3월까지 축구교실이 내다 그 뒤 개인 부담으로 바꿨다고 해명했음.
- 2022년에는 이촌 축구장 입찰에서 2억 5,300만 원을 써내 3억 50원을 낸 법인에 밀렸음.
- 그 법인이 반년도 안 돼 사용권을 포기하면서 축구교실은 이촌으로 돌아왔음.
- 2026년 서울시가 6세 미만 회비를 3만 원으로 정하자 그는 반을 줄여 적자의 폭을 줄이겠다고 인스타그램에 썼음.
- 지도자로도 일했음.
- 1997년 1월 7일 그는 국가대표팀 전임감독이 됐음.
- 그날은 결혼 20주년이었음.
-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도중 경질된 뒤 월간지 인터뷰에서 프로축구 승부조작 발언을 했다가 대한축구협회에서 자격정지 5년을 받았음.
- 2003년 10월에는 수원 삼성 감독으로 10년 만에 K리그에 돌아왔고 2010년 6월 스스로 물러났음.
- 감독 연봉은 공개되지 않았음.
- 2010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감독할 때도, MBC에서 해설할 때도 돈은 좀 받았다고 말했음.
- 판을 바꾼 건 한남동이었음.
- 2004년 10월 그는 차두리와 함께 이태원로 대로변 건물을 반씩 나눠 샀음. 비슷한 글 박찬호, 메이저리그 연봉을 신사동 빌딩으로 바꾸기까지
- 건축물대장을 보면 대지 330.1㎡에 연면적 978㎡, 지하 1층~지상 5층이고 1985년 9월 사용승인을 받았음.
- 땅의 높낮이가 달라 대로 쪽에서는 3층, 뒤쪽에서는 5층으로 보인다고 함.
- 실거래 신고 의무가 생기기 전이라 산 값은 공개되지 않았음.
- 2026년 10월 8일 조회 기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용산구 상업·업무용 매매 신고에도 이 건물과 대지·연면적이 맞는 거래는 없음.
- 2013년 보도는 약 35억 원, 2026년 보도는 20억 원 안팎으로 추정해 엇갈림.
- 그는 이 건물을 담보로 하나은행에서 2006년 2월과 2012년 2월 돈을 빌렸다고 보도됐음.
- 2013년 보도에 나온 채권최고액은 6억 7,200만 원이었고, 2015년 보도에서는 12억 원이었음.
- 2013년에는 건물 전체를 한 임차인에게 통째로 빌려주고 있었다고 함.
- 2015년부터는 카페 앤트러사이트가 이 건물에 들었음.
- 앤트러사이트 공식 사이트의 주소는 이태원로 240 1~3층임.
- 디자인 편집숍 MMMG와 프라이탁 서울점도 공식 사이트에 같은 주소를 적어 둔 한 건물의 이웃이었음.
- 그 사이 이 길은 '제2의 가로수길'로 불리며 2009~2010년부터 땅값이 크게 올랐다고 함.
- 앤트러사이트는 10년 만인 2025년 8월 계약이 끝나 문을 닫았음.
- 2025년 10월부터는 대수선 공사가 시작됐고, 공사 건축주에는 '차범근 외 1인'이 적혔음.
- 이 자리에는 스위스 러닝화 브랜드 온러닝의 국내 첫 단독 매장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보도됐음.
- 한남동에서 산 건물은 하나 더 있었음.
- 2006년 8월 차범근과 두 아들은 대지 209.6㎡ 건물을 19억 4,000만 원에 샀음.
- 2012년 5월 이 건물을 62억 원에 팔아 6년 만에 42억 6,000만 원을 남겼음.
- 국토교통부 실거래 신고로도 같은 면적의 건물이 2006년 8월 19억 4,000만 원, 2012년 5월 62억 원에 거래된 것이 확인됨.
- 돈을 대하는 태도는 그가 직접 쓴 글에 남아 있음.
- 1997년 신문 칼럼에서 그는 감독 시절 새로 온 선수의 전세금을 자기 돈으로 먼저 대고 구단에서 돌려받곤 했다고 적었음.
- 같은 글에서 덜 입고 덜 쓰더라도 발 뻗고 잘 수 있는 지혜를 말했음.
-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태 때는 남의 돈을 먹는 것을 비판하며, 아내가 가계부에 적어 둔 땀과 노력이라는 말로 글을 맺었음.
- 2017년 인터뷰에서 그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로 독일에 가겠다고 한 결단과, 돌아와 축구교실과 축구상을 만든 것을 꼽았음.
- 그럼 차범근의 보유 지분 가치를 추산해봄.
- 근거는 2026년 1월 보도와 건축물대장임.
- 이태원로 240 건물은 차범근과 차두리가 50%씩 가졌다고 보도됐음.
- 이 건물은 매물로 나온 적이 없어 매겨진 값이 없음.
- 그래서 같은 보도에 나온 인근 5층 건물의 호가 380억 원을 씀.
- 380억 원 × 50% = 190억 원임.
- 2015년 업계 추정은 건물 전체 105억~110억 원이었음.
- 이 추산은 달라질 수 있음.
- 380억 원은 이 건물이 아니라 이웃 건물의 팔겠다고 내건 값임.
- 담보로 빌린 돈을 얼마나 갚았는지, 대수선 공사비는 얼마인지 드러나지 않음.
- 2012년에 판 건물의 차익과 이촌동 아파트, 사는 집, 세금도 이 추산에 들어 있지 않음.
차범근 부동산 한눈에 보기 (보도·실거래 신고·건축물대장)
| 언제 | 무엇을 | 누구 이름으로 | 값 |
|---|---|---|---|
| 1988년 | 이촌동 공급 82평 아파트 | 본인(2007년 차세찌에게 증여) | 공개 안 됨 |
| 1989년 | 이촌동 공급 63평 아파트 | 본인 | 공개 안 됨 |
| 2004년 10월 | 이태원로 240 건물 | 차범근·차두리 50%씩 | 35억 원 또는 20억 원 안팎(보도 엇갈림) |
| 2006년 8월 | 한남동 대지 209.6㎡ 건물 | 차범근·차두리·차세찌 | 19억 4,000만 원 |
| 2012년 5월 | 위 건물 매각 | 같음 | 62억 원 |
산 값과 판 값은 보도이고, 2006년과 2012년 거래는 국토교통부 실거래 신고로도 확인됨. 건물 규모와 사용승인일은 건축물대장 기준임.
🍿 여담
- 차범근의 독일 별명 '차붐'은 독일 사람들이 '차범근'을 발음하기 어려워 붙인 이름이라고 보도됐음.
- 레버쿠젠 구단 사이트는 그곳에서 '부미(Bummi)'로 불렸다고 적었음.
- 그는 24살에 A매치 100경기를 채워 비유럽 선수 가운데 처음이자 가장 어린 나이로 100경기를 넘었음.
- 본문의 프랑크푸르트 첫 해에는 서러운 기억도 있음.
- 1980년 인터뷰에서 그는 자리를 잡지 못하던 시절 쾰른에서 뛰던 일본 선수 오쿠데라를 지옥에서 천국을 구경하듯 부러워했다고 말했음.
- 1980/81 시즌 레버쿠젠 수비수 겔스도르프의 태클에 크게 다쳐 입원했지만, 5주 만에 돌아와 그를 용서했다고 프랑크푸르트 구단이 적었음.
- 그 겔스도르프는 나중에 레버쿠젠에서 그와 가족을 돌봐 준 사람이 됐음.
- 1980년 UEFA컵 결승에서 그를 막은 상대는 20살의 로타어 마테우스였음.
- 프랑크푸르트 지하철 빌리 브란트 광장역에는 구단 전설 12명을 새긴 '아인트라흐트의 기둥'이 있고, 차범근도 그 12명에 들었음.
- 2002년 월드컵 해설 중 그가 독일 대표팀을 혹평하자 독일 감독 푈러가 레버쿠젠 시절 아스피린을 너무 많이 먹은 것 아니냐고 받아쳤다가 사과했다고 보도됐음.
- 1980년 인터뷰 때 아내는 둘째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들이면 '두리', 딸이면 '두나'로 이름까지 지어 뒀다고 함.
- 그 둘째가 이태원로 건물을 반씩 가진 차두리임.
- 차두리는 2015년 은퇴할 때 축구를 너무 잘하는 아버지를 둬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근처에 못 가니 아버지가 밉기도 했다고 말했음.
- 손흥민은 레버쿠젠에서 뛸 때 그에게 선배님 기록을 깨겠다고 말했고, 그는 그 말에 움찔했다고 2021년 방송에서 털어놓았음.
- 그는 지금도 선수 때 산 스위스 시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음.
- 겨울에는 축구교실 운동장의 얼음을 직접 깨다가 학부모가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간 적도 있다고 함.
- 2019년 독일 대통령은 그에게 십자공로훈장을 줬음.
💰 어떻게 벌었나
연봉 → 아파트 → 한남동 건물
- 차범근이 가진 건 돈이 아니라 축구 실력이었고, 그 실력이 서독에서 연봉이 됐음.
- 독일에서 번 돈은 1988~1989년 서울 이촌동 아파트 두 채로 바뀌었고, 2004년부터는 한남동 건물이 가장 큰 자산이 됐음.
- 2006년 19억 4,000만 원에 산 한남동 건물을 2012년 62억 원에 팔았으니 나눠 보면 6년 만에 약 3.2배임.
- 건물은 사 둔 땅의 값이 동네와 함께 오르고 담보로 돈을 빌릴 수도 있어 레버리지에 유리하고, 그는 이태원로 건물을 담보로 하나은행에서 두 차례 돈을 빌렸다고 보도됐음.
- 건물 하나를 한 임차인에게 통째로 빌려줘 은행 이자를 넉넉히 메웠다는 게 2013년 보도의 설명임.
- 반대로 축구교실은 해설료를 넣고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포기한 적까지 있는, 돈을 쓰는 쪽이었음.
- 2015년 업계가 105억~110억 원으로 본 이태원로 건물은 2026년 보도에서 300억 원 넘는 차익이 기대되는 곳이 됐고, 그의 몫은 약 190억 원으로 추산됨.
- 아쉬운 점은 독일에서 번 돈의 일부임.
- 프랑크푸르트 부회장이 낀 부동산 거래로 돈을 떼여, 1988년까지도 레버쿠젠에서 뛰며 그 빚을 갚고 있었다고 현지 신문이 보도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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