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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분데스리가 연봉을 한남동 건물로 바꾸기까지

객주2026-10-07인물국내부동산 0 8
목차 · 4개 칸
  1. 차범근이 아들 차두리와 반씩 가진 서울 한남동 이태원로 240 건물은 그의 몫만 약 190억 원어치로 추산됨.
  2. 2026년 1월 보도에 나온 인근 5층 건물의 호가 380억 원을 반으로 나눈 값임.
  3. 시작은 가난이었음.
  4. 2017년 에스콰이어 인터뷰에서 그는 너무 가난해서 축구 말고는 미래가 없었다고 말했음.
  5. 운동화는 몇 번 신으면 갈라졌는데 1년에 한 번 사기도 어려웠다고 함.
  6. 아버지는 좋은 땅을 팔고 싼 땅으로 옮겨 그 차액으로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 전학비를 대 줬다고 함.
  7. 그게 집에서 받은 마지막 지원이었다는 것임.
  8. 1978년 독일로 가기 직전 그의 재산은 아파트 한 채였음.
  9. 결혼할 때는 250만 원을 빌려 강남구청 앞 아파트에 전세로 살았고, 군 복무하는 사이 아내가 피아노를 가르쳐 번 돈으로 17평 아파트를 27평으로 늘려 놓았다고 함.
  10. 그는 그게 재산 전부였다고 말했음.
  11. 독일행을 민 사람도 아내였음.
  12. 아내는 이 아파트를 팔아 1년 동안 대 줄 테니 그 1년 안에 벤치 멤버에서 벗어나라고 했다고 함.
  13. 그때 국내에서는 가면 역적이라는 반대가 많았고, 국부 유출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함.
  14. 1978년 12월 그는 서독 다름슈타트에서 한 경기를 뛰고 군 복무 때문에 귀국했음.
  15. 그리고 1979년 7월 12일 프랑크푸르트와 입단 계약을 맺었음.
  16. 1980년 6월 인터뷰에 따르면 연봉은 1981년까지 24만 마르크(당시 약 6,312만 원)였음.
  17. 다른 선수들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고 함.
  18. 아내 오은미는 같은 인터뷰에서 보너스와 부수입이 따로 있지만 서독은 세금이 38~40%나 된다고 말했음.
  19. 세금만 아니면 한 해 1억 원쯤 될 거라는 게 아내의 계산이었음.
  20. 첫 시즌에 그는 46경기에서 15골을 넣었음.
  21. 1980년에는 프랑크푸르트가 UEFA컵에서 우승했음.
  22. 돈을 잃은 일도 있었음.
  23. 1988년 독일 일간지 타츠(taz)는 프랑크푸르트 부회장 첸커 시절의 '건축주 모델' 부동산 거래로 차범근 같은 외국인 선수들이 돈을 떼였다고 보도했음.
  24. 같은 기사는 그가 1988년에도 레버쿠젠에서 뛰며 그때 생긴 빚더미를 갚고 있다고 적었음.
  25. 1983년 그는 레버쿠젠으로 옮겼음.
  26. 두 구단의 공식 사이트는 프랑크푸르트가 재정난으로 이적료 수입이 필요해 선수를 팔아야 했다고 설명함.
  27. 그해 여름 휴가에서 돌아올 때까지 다음 팀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레버쿠젠 단장 칼문트가 공항에 마중 나와 호텔에서 계약을 매듭지었다고 함.
  28. 레버쿠젠에서는 구단 최고 연봉을 받았다고 보도됐음.
  29. 액수는 공개된 적이 없음.
  30. 1988년 UEFA컵 결승 2차전에서는 81분에 3-0을 만드는 골을 넣어 레버쿠젠의 우승을 이끌었음.
  31. 그는 그 골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골이라고 말했음.
  32. 1989년 은퇴할 때까지 분데스리가 308경기에서 98골을 넣었음.
  33. 308경기는 2020년 하세베 마코토가 깰 때까지 아시아 선수 최다 출전 기록이었음.
  34. 독일에서 번 돈은 한국 집으로 왔음.
  35. 아직 레버쿠젠에서 뛰던 1988년 서울 이촌동의 공급 82평 복층 아파트를 샀다고 보도됐음.
  36. 1989년에는 같은 동네의 공급 63평 아파트를 자기 이름으로 샀음.
  37. 82평 아파트는 2007년 막내 차세찌에게 증여했다고 보도됐음.
  38. 그는 가족이 독일에 남길 원했고 코치 제안도 있었지만 사명 때문에 돌아왔다고 말했음.
  39. 그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축구교실이었음.
  40.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차범근축구교실은 그가 아직 레버쿠젠에서 뛰던 1988년 국내 첫 방과 후 축구교실로 세워졌음.
  41. 공부와 축구를 함께 해야 한다는 유럽에서 얻은 생각이 출발점이었다고 함.
  42. 첫 기수에는 아들 차두리가 있었음.
  43. 축구교실은 돈을 버는 곳이 아니었음.
  44. 1997년 국유지였던 서울 이촌 축구장에 1억 2,000만 원을 들여 컨테이너 시설을 지었다고 보도됐음.
  45. 2005년에는 축구장 4면과 관리동을 지어 서울시에 기부했음.
  46. 2010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MBC에서 받은 해설료를 축구교실 훈련센터를 짓는 데 썼다고 말했음.
  47. 그해 SBS 해설을 맡으며 돈을 많이 주면 또 축구교실에 쓰겠다고 했음.
  48. 2010년쯤에는 연 1억 원에 가까운 한강공원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축구교실을 포기했다가 다시 입찰해 되찾았다고 함.
  49. 2016년 법률대리인은 그가 축구교실에서 어떤 명목의 돈도 받지 않는다고 밝혔음.
  50. 같은 해 논란도 있었음.
  51. MBC '시사매거진 2580'은 축구교실의 수강료가 주 1회 월 5만 원, 주 3회 월 12만~13만 원으로 서울시 기준(4만 원, 7만 원)보다 높았다고 보도했음.
  52. 서울시는 위약금을 물렸음.
  53. 자택 기사의 급여를 축구교실이 냈다는 지적도 나왔음.
  54. 법률대리인은 수강료 문제는 불찰과 잘못을 인정했고, 기사 급여는 2012년 3월까지 축구교실이 내다 그 뒤 개인 부담으로 바꿨다고 해명했음.
  55. 2022년에는 이촌 축구장 입찰에서 2억 5,300만 원을 써내 3억 50원을 낸 법인에 밀렸음.
  56. 그 법인이 반년도 안 돼 사용권을 포기하면서 축구교실은 이촌으로 돌아왔음.
  57. 2026년 서울시가 6세 미만 회비를 3만 원으로 정하자 그는 반을 줄여 적자의 폭을 줄이겠다고 인스타그램에 썼음.
  58. 지도자로도 일했음.
  59. 1997년 1월 7일 그는 국가대표팀 전임감독이 됐음.
  60. 그날은 결혼 20주년이었음.
  61.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도중 경질된 뒤 월간지 인터뷰에서 프로축구 승부조작 발언을 했다가 대한축구협회에서 자격정지 5년을 받았음.
  62. 2003년 10월에는 수원 삼성 감독으로 10년 만에 K리그에 돌아왔고 2010년 6월 스스로 물러났음.
  63. 감독 연봉은 공개되지 않았음.
  64. 2010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감독할 때도, MBC에서 해설할 때도 돈은 좀 받았다고 말했음.
  65. 판을 바꾼 건 한남동이었음.
  66. 2004년 10월 그는 차두리와 함께 이태원로 대로변 건물을 반씩 나눠 샀음. 비슷한 글 박찬호, 메이저리그 연봉을 신사동 빌딩으로 바꾸기까지
  67. 건축물대장을 보면 대지 330.1㎡에 연면적 978㎡, 지하 1층~지상 5층이고 1985년 9월 사용승인을 받았음.
  68. 땅의 높낮이가 달라 대로 쪽에서는 3층, 뒤쪽에서는 5층으로 보인다고 함.
  69. 실거래 신고 의무가 생기기 전이라 산 값은 공개되지 않았음.
  70. 2026년 10월 8일 조회 기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용산구 상업·업무용 매매 신고에도 이 건물과 대지·연면적이 맞는 거래는 없음.
  71. 2013년 보도는 약 35억 원, 2026년 보도는 20억 원 안팎으로 추정해 엇갈림.
  72. 그는 이 건물을 담보로 하나은행에서 2006년 2월과 2012년 2월 돈을 빌렸다고 보도됐음.
  73. 2013년 보도에 나온 채권최고액은 6억 7,200만 원이었고, 2015년 보도에서는 12억 원이었음.
  74. 2013년에는 건물 전체를 한 임차인에게 통째로 빌려주고 있었다고 함.
  75. 2015년부터는 카페 앤트러사이트가 이 건물에 들었음.
  76. 앤트러사이트 공식 사이트의 주소는 이태원로 240 1~3층임.
  77. 디자인 편집숍 MMMG와 프라이탁 서울점도 공식 사이트에 같은 주소를 적어 둔 한 건물의 이웃이었음.
  78. 그 사이 이 길은 '제2의 가로수길'로 불리며 2009~2010년부터 땅값이 크게 올랐다고 함.
  79. 앤트러사이트는 10년 만인 2025년 8월 계약이 끝나 문을 닫았음.
  80. 2025년 10월부터는 대수선 공사가 시작됐고, 공사 건축주에는 '차범근 외 1인'이 적혔음.
  81. 이 자리에는 스위스 러닝화 브랜드 온러닝의 국내 첫 단독 매장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보도됐음.
  82. 한남동에서 산 건물은 하나 더 있었음.
  83. 2006년 8월 차범근과 두 아들은 대지 209.6㎡ 건물을 19억 4,000만 원에 샀음.
  84. 2012년 5월 이 건물을 62억 원에 팔아 6년 만에 42억 6,000만 원을 남겼음.
  85. 국토교통부 실거래 신고로도 같은 면적의 건물이 2006년 8월 19억 4,000만 원, 2012년 5월 62억 원에 거래된 것이 확인됨.
  86. 돈을 대하는 태도는 그가 직접 쓴 글에 남아 있음.
  87. 1997년 신문 칼럼에서 그는 감독 시절 새로 온 선수의 전세금을 자기 돈으로 먼저 대고 구단에서 돌려받곤 했다고 적었음.
  88. 같은 글에서 덜 입고 덜 쓰더라도 발 뻗고 잘 수 있는 지혜를 말했음.
  89.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태 때는 남의 돈을 먹는 것을 비판하며, 아내가 가계부에 적어 둔 땀과 노력이라는 말로 글을 맺었음.
  90. 2017년 인터뷰에서 그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로 독일에 가겠다고 한 결단과, 돌아와 축구교실과 축구상을 만든 것을 꼽았음.
  91. 그럼 차범근의 보유 지분 가치를 추산해봄.
  92. 근거는 2026년 1월 보도와 건축물대장임.
  93. 이태원로 240 건물은 차범근과 차두리가 50%씩 가졌다고 보도됐음.
  94. 이 건물은 매물로 나온 적이 없어 매겨진 값이 없음.
  95. 그래서 같은 보도에 나온 인근 5층 건물의 호가 380억 원을 씀.
  96. 380억 원 × 50% = 190억 원임.
  97. 2015년 업계 추정은 건물 전체 105억~110억 원이었음.
  98. 이 추산은 달라질 수 있음.
  99. 380억 원은 이 건물이 아니라 이웃 건물의 팔겠다고 내건 값임.
  100. 담보로 빌린 돈을 얼마나 갚았는지, 대수선 공사비는 얼마인지 드러나지 않음.
  101. 2012년에 판 건물의 차익과 이촌동 아파트, 사는 집, 세금도 이 추산에 들어 있지 않음.

차범근 부동산 한눈에 보기 (보도·실거래 신고·건축물대장)

언제 무엇을 누구 이름으로 값
1988년 이촌동 공급 82평 아파트 본인(2007년 차세찌에게 증여) 공개 안 됨
1989년 이촌동 공급 63평 아파트 본인 공개 안 됨
2004년 10월 이태원로 240 건물 차범근·차두리 50%씩 35억 원 또는 20억 원 안팎(보도 엇갈림)
2006년 8월 한남동 대지 209.6㎡ 건물 차범근·차두리·차세찌 19억 4,000만 원
2012년 5월 위 건물 매각 같음 62억 원

산 값과 판 값은 보도이고, 2006년과 2012년 거래는 국토교통부 실거래 신고로도 확인됨. 건물 규모와 사용승인일은 건축물대장 기준임.


🍿 여담

  1. 차범근의 독일 별명 '차붐'은 독일 사람들이 '차범근'을 발음하기 어려워 붙인 이름이라고 보도됐음.
  2. 레버쿠젠 구단 사이트는 그곳에서 '부미(Bummi)'로 불렸다고 적었음.
  3. 그는 24살에 A매치 100경기를 채워 비유럽 선수 가운데 처음이자 가장 어린 나이로 100경기를 넘었음.
  4. 본문의 프랑크푸르트 첫 해에는 서러운 기억도 있음.
  5. 1980년 인터뷰에서 그는 자리를 잡지 못하던 시절 쾰른에서 뛰던 일본 선수 오쿠데라를 지옥에서 천국을 구경하듯 부러워했다고 말했음.
  6. 1980/81 시즌 레버쿠젠 수비수 겔스도르프의 태클에 크게 다쳐 입원했지만, 5주 만에 돌아와 그를 용서했다고 프랑크푸르트 구단이 적었음.
  7. 그 겔스도르프는 나중에 레버쿠젠에서 그와 가족을 돌봐 준 사람이 됐음.
  8. 1980년 UEFA컵 결승에서 그를 막은 상대는 20살의 로타어 마테우스였음.
  9. 프랑크푸르트 지하철 빌리 브란트 광장역에는 구단 전설 12명을 새긴 '아인트라흐트의 기둥'이 있고, 차범근도 그 12명에 들었음.
  10. 2002년 월드컵 해설 중 그가 독일 대표팀을 혹평하자 독일 감독 푈러가 레버쿠젠 시절 아스피린을 너무 많이 먹은 것 아니냐고 받아쳤다가 사과했다고 보도됐음.
  11. 1980년 인터뷰 때 아내는 둘째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들이면 '두리', 딸이면 '두나'로 이름까지 지어 뒀다고 함.
  12. 그 둘째가 이태원로 건물을 반씩 가진 차두리임.
  13. 차두리는 2015년 은퇴할 때 축구를 너무 잘하는 아버지를 둬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근처에 못 가니 아버지가 밉기도 했다고 말했음.
  14. 손흥민은 레버쿠젠에서 뛸 때 그에게 선배님 기록을 깨겠다고 말했고, 그는 그 말에 움찔했다고 2021년 방송에서 털어놓았음.
  15. 그는 지금도 선수 때 산 스위스 시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음.
  16. 겨울에는 축구교실 운동장의 얼음을 직접 깨다가 학부모가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간 적도 있다고 함.
  17. 2019년 독일 대통령은 그에게 십자공로훈장을 줬음.

💰 어떻게 벌었나

연봉 → 아파트 → 한남동 건물

  1. 차범근이 가진 건 돈이 아니라 축구 실력이었고, 그 실력이 서독에서 연봉이 됐음.
  2. 독일에서 번 돈은 1988~1989년 서울 이촌동 아파트 두 채로 바뀌었고, 2004년부터는 한남동 건물이 가장 큰 자산이 됐음.
  3. 2006년 19억 4,000만 원에 산 한남동 건물을 2012년 62억 원에 팔았으니 나눠 보면 6년 만에 약 3.2배임.
  4. 건물은 사 둔 땅의 값이 동네와 함께 오르고 담보로 돈을 빌릴 수도 있어 레버리지에 유리하고, 그는 이태원로 건물을 담보로 하나은행에서 두 차례 돈을 빌렸다고 보도됐음.
  5. 건물 하나를 한 임차인에게 통째로 빌려줘 은행 이자를 넉넉히 메웠다는 게 2013년 보도의 설명임.
  6. 반대로 축구교실은 해설료를 넣고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포기한 적까지 있는, 돈을 쓰는 쪽이었음.
  7. 2015년 업계가 105억~110억 원으로 본 이태원로 건물은 2026년 보도에서 300억 원 넘는 차익이 기대되는 곳이 됐고, 그의 몫은 약 190억 원으로 추산됨.
  8. 아쉬운 점은 독일에서 번 돈의 일부임.
  9. 프랑크푸르트 부회장이 낀 부동산 거래로 돈을 떼여, 1988년까지도 레버쿠젠에서 뛰며 그 빚을 갚고 있었다고 현지 신문이 보도했음.

관련 링크

본인 인터뷰·글 7건, 구단·정부 공식 자료 6건, 건축물대장과 실거래 신고, 보도 30여 건을 확인해 정리함. 그중 직접 볼 만한 것만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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