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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Walt Disney), 첫 회사를 파산시키고 미키마우스를 만들기까지
목차 · 4개 칸
- 월트 디즈니(Walt Disney)가 세운 회사는 2025 회계연도에 매출 944억 2,500만 달러를 냈고 2026년 10월 9일 시가총액은 약 1,866억 달러임.
- 시작은 스무 살에 자본금 1만 5,000달러로 세웠다가 파산한 캔자스시티의 작은 만화 회사였음.
- 월트 본인이 가진 몫은 그가 숨진 1966년의 지분을 보여 주는 공시가 전자 공시 시스템에 없어 추산하지 않았음.
- 1922년 5월 스무 살의 월트는 캔자스시티에 '래프오그램 필름'을 세웠음.
- 동화를 요즘 식으로 바꾼 짧은 만화 일곱 편을 만들었음.
- 그런데 이 만화들을 사 주기로 한 테네시의 배급사가 먼저 망했음.
-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기록에 따르면 제작비는 생각보다 많이 들었고 돈은 작품을 끝내야만 들어왔음.
- 월트는 직원 월급을 일부만 주고 나머지는 나중에 주겠다며 버텼음.
- 손님을 만나러 갈 멀쩡한 구두가 없어 약속에 못 간 적도 있었다고 함.
- 직원들은 하나둘 떠났음.
- 월트는 사무실에서 자고, 아래층 식당에서 외상으로 먹고, 일주일에 한 번 기차역에서 10센트를 내고 씻었다고 함.
- 보다 못한 형 로이 디즈니(Roy Disney)가 "거기서 나오는 게 좋겠다"고 권했음.
- 1923년 8월 회사는 문을 닫았고 그해가 가기 전 파산 절차가 시작됐음.
- 스물한 살의 월트는 영화 카메라를 팔아 로스앤젤레스행 기차표를 샀음.
- 돈이 없는데도 1등석을 끊었음.
- 아내 릴리언 디즈니(Lillian Disney)는 훗날 "월트는 늘 최고를 가져야 했다"고 말했음.
- 가방에는 캔자스시티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만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필름이 들어 있었음.
- 월트는 "젊을 때 제대로 한번 실패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돌아봤음.
- 할리우드에 와서는 만화에 질렸다며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했음.
- 영화사에 자리를 얻지 못하자 삼촌 집 차고에 남은 나무와 상자로 만화 작업대를 다시 만들었음.
- 판을 바꾼 건 캔자스시티에서 반만 만들고 가져온 그 '앨리스' 필름이었음.
- 뉴욕의 배급업자 마거릿 윙클러(Margaret Winkler)가 1923년 10월 15일 전보로 계약을 제안했음.
- 월트는 그날 밤 보훈병원에서 결핵을 치료하던 형 로이를 찾아가 함께하자고 했음.
- 다음 날인 1923년 10월 16일 로이는 병원에서 나왔고 월트는 앨리스 시리즈 계약서에 서명했음.
- 디즈니 수석 기록관은 이 계약서를 "디즈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라고 불렀음.
- 앨리스 시리즈는 한 편에 1,500달러로 시작해 1927년까지 이어졌음.
- 그다음 만든 캐릭터가 '행운의 토끼 오스왈드'였음.
- 1927~1928년 오스왈드 만화 26편을 만들었음.
- 오스왈드는 사탕·스텐실·배지로 나온 디즈니의 첫 캐릭터 상품이었음.
- 그런데 1928년 3월 윙클러와 결혼해 배급 일을 이어받은 찰스 민츠(Charles Mintz)가 오스왈드와 월트의 애니메이터 절반을 데려갔음.
- 오스왈드의 저작권은 배급을 맡은 유니버설에 있었음.
- 두 번째 실패였음.
- 월트는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새 캐릭터를 떠올렸다고 말해 왔음.
- 오랜 동료 애니메이터 어브 아이웍스(Ub Iwerks)가 새 캐릭터의 디자인을 도왔음.
- 처음 이름은 '모티머'였는데 릴리언이 너무 거창하다며 '미키'를 권했다고 전해짐.
- 1928년 11월 18일 뉴욕 콜로니 극장에서 그림과 소리가 맞게 나오는 첫 만화 '증기선 윌리'가 개봉했음.
- 미키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음.
- 이번에는 캐릭터가 디즈니 것이었음.
- 1929년 12월 16일 형제의 동업은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이라는 회사가 됐음.
- 캐릭터 상품도 우연히 시작됐음.
- 1929년 뉴욕의 한 호텔 로비에서 어떤 사람이 아이들 연필 공책에 미키를 넣게 해 달라며 300달러를 내밀었음.
- 돈이 급했던 월트는 받아들였고 이게 디즈니 캐릭터 사용권 사업의 시작이었음.
- 1932년부터는 영업 수완가 케이 케이먼(Kay Kamen)이 17년 동안 디즈니 상품 사용권을 도맡았음.
- 같은 1932년 월트는 흑백으로 만들던 만화를 큰돈을 버리고 컬러로 다시 만들었음.
- 테크니컬러와 2년 동안 만화 영화에서 이 색 기술을 혼자 쓰는 계약도 맺었음.
- 그 만화 '꽃과 나무'는 아카데미 단편 만화상을 받았음.
- 그런데 월트는 단편 만화로는 큰돈을 벌지 못했다고 디즈니 공식 기록은 적었음.
- 그래서 고른 길이 첫 장편 만화 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였음.
- 750명 넘는 화가가 3년 동안 매달렸고 제작비는 140만 달러가 들었음.
- 1937년 12월 21일 개봉한 영화는 처음 개봉 때 세계에서 850만 달러를 벌었음.
- 아이들이 극장에 10센트를 내고 들어가던 때였음.
- 한동안 역대 가장 많이 번 영화였다가 2년쯤 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자리를 내줬음.
- 월트는 백설공주로 번 돈으로 버뱅크에 새 스튜디오를 지었고 영화는 그 뒤 여덟 번 다시 극장에 걸렸음.
-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스튜디오는 군 교육용 영화를 만들며 몸집을 줄였음.
- 전쟁 뒤에도 살림은 한동안 펴지지 않았고 1950년 '신데렐라'와 실사 영화 '보물섬'으로 다시 돈을 벌기 시작했음.
- 회사를 마침내 든든하게 만든 건 1955년의 디즈니랜드였다는 게 디즈니 공식 기록의 설명임.
- 월트는 딸들을 놀이공원에 데려가면 아이들만 놀고 자기는 벤치에서 팝콘을 먹는 게 아쉬웠다고 함.
- 부모와 아이가 함께 노는 곳을 짓겠다며 디자이너들을 자기 돈으로 고용해 구상을 시작했음.
- 생명보험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별장을 팔고 여러 회사에서 돈을 받아 애너하임의 오렌지 농장 땅 160에이커를 샀음.
- 1955년 7월 17일 1,700만 달러를 들인 디즈니랜드가 문을 열었음.
- 월트는 텔레비전 주간 프로그램으로 공사 중인 공원을 미리 보여 주며 손님을 모았음.
- 공원에서 들어오는 돈과 캐릭터 상품 사용료가 다음 사업의 밑천이 됐음.
- 1966년에는 워런 버핏(Warren Buffett)도 디즈니를 눈여겨봤음.
- 버핏은 그때 디즈니의 시가총액이 9,000만 달러가 안 됐는데 디즈니랜드의 새 놀이기구 하나에 1,700만 달러가 들었다고 적었음. 비슷한 글 워런 버핏 1995년 주주서한 (버크셔 해서웨이)
- 월트는 1966년 12월 15일 숨졌음.
- 숨지기 직전까지 미래 도시 구상 에프코트(EPCOT)를 짜고 있었음.
- 형 로이는 동생이 남긴 플로리다 계획을 이어받아 1971년 10월 월트 디즈니 월드를 열었음.
- 4억 달러짜리 사업이었는데 문을 열 때 회사에 갚을 빚이 없었다고 디즈니 공식 기록은 적었음.
- 로이는 개장 두 달 뒤인 1971년 12월 20일 숨졌음.
- 2006년 디즈니는 픽사를 74억 달러에 사들였고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디즈니 최대 개인 주주가 됐음. 비슷한 글 스티브 잡스(Steve Jobs) 2005년 스탠퍼드 졸업 연설 (Stay hungry, stay foolish)
- 같은 2006년 빼앗겼던 오스왈드도 78년 만에 유니버설에서 디즈니로 돌아왔음.
- 월트는 "이 모든 게 쥐 한 마리에서 시작됐다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음.
- 파산한 캔자스시티 회사의 자본금은 1만 5,000달러였고 2025 회계연도 디즈니의 매출은 944억 2,500만 달러였음.
- 2026년 7월 29일 디즈니의 발행 주식은 17억 2,669만 주였고 10월 9일 종가 108.05달러를 곱하면 시가총액은 약 1,866억 달러임.
🍿 여담
- 본문의 아이웍스는 월트가 열아홉 살 때 처음 차린 회사의 동업자였음.
- 1920년 두 사람이 세운 회사 이름은 '아이웍스-디즈니'였는데 '디즈니-아이웍스'는 안경 공장 이름처럼 들려서였다고 디즈니 공식 기록은 적었음.
- 1924년 할리우드에 온 아이웍스의 첫 주급 40달러는 월트보다 많았음.
- 그는 하루에 그림 700장을 그린 것으로 유명했는데 요즘 숙련된 애니메이터는 일주일에 80~100장을 그린다고 디즈니 공식 기록은 적었음.
- 월트는 1946년까지 미키의 목소리를 직접 맡았음.
- 1939년 백설공주는 아카데미 특별상으로 큰 오스카 하나와 작은 오스카 일곱 개를 받았고 상은 배우 셜리 템플(Shirley Temple)이 건넸음.
- 월트가 백설공주를 처음 떠올린 건 1917년 열다섯 살 신문 배달 소년으로 본 무성 영화에서였음.
- 월트의 아내 릴리언은 1987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공연장을 짓는 데 5,000만 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했음.
💰 어떻게 벌었나
캐릭터 → 영화 → 상품·놀이공원
- 월트가 판 건 사람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가 나오는 이야기였고, 값은 극장 관객과 상품을 만드는 회사와 놀이공원 손님이 냈음.
- 오스왈드를 저작권째 빼앗긴 뒤 만든 미키는 디즈니 것이라 영화가 끝나도 공책과 장난감과 놀이공원에서 계속 돈을 버는 자산이 됐음.
- 첫 사용료는 연필 공책 한 가지에 300달러였지만 이 사업은 케이먼이 17년 동안 맡을 만큼 커졌음.
- 상품은 남의 공장이 만들고 남의 가게가 팔아 디즈니가 공장을 짓지 않아도 캐릭터가 팔리는 곳이 늘어나 레버리지에 유리했음.
- 장편 영화는 한 번 만들면 여러 번 다시 걸 수 있는 자산이라 140만 달러를 들인 백설공주는 처음 개봉 때만 850만 달러를 벌어 새 스튜디오를 지을 돈이 됐음.
- 회사 가치는 2026년 10월 9일 기준 약 1,866억 달러임.
- 아쉬운 점은 번 돈이 늘 다음 작품으로 들어갔다는 것임.
- 단편 만화로는 큰돈을 못 벌었고 디즈니랜드는 생명보험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별장까지 팔아 지었음.
관련 링크
공식 기록(D23·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 16건,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1건, 공시 2건, 시세 1건을 확인해 정리함. 그중 직접 볼 만한 것만 모음.
- 월트 디즈니 컴퍼니: 회사 공식 사이트(영어)
- 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 가족이 세운 박물관 공식 사이트(영어)
- D23 'A Walk with Walt Disney: 1923': 파산 뒤 할리우드행과 앨리스 계약(영어)
- 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 '100 Years Ago: Walt Goes West': 카메라를 팔아 1등석 기차를 탄 이야기(영어)
-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월트 디즈니의 파산': 래프오그램 파산 기록(영어)
- D23 '월트 디즈니': 디즈니 기록관이 쓴 월트의 일생(영어)
- D23 '캐릭터 상품': 300달러짜리 연필 공책에서 시작한 사용권 사업(영어)
- D23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제작비와 첫 개봉 수입(영어)
- D23 '디즈니랜드': 생명보험을 담보로 지은 첫 공원(영어)
- 디즈니 2025 회계연도 10-K: 매출 944억 2,500만 달러(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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