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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Walt Disney), 첫 회사를 파산시키고 미키마우스를 만들기까지

객주19일 전인물해외 0 11
목차 · 4개 칸
  1. 월트 디즈니(Walt Disney)가 세운 회사는 2025 회계연도에 매출 944억 2,500만 달러를 냈고 2026년 10월 9일 시가총액은 약 1,866억 달러임.
  2. 시작은 스무 살에 자본금 1만 5,000달러로 세웠다가 파산한 캔자스시티의 작은 만화 회사였음.
  3. 월트 본인이 가진 몫은 그가 숨진 1966년의 지분을 보여 주는 공시가 전자 공시 시스템에 없어 추산하지 않았음.
  4. 1922년 5월 스무 살의 월트는 캔자스시티에 '래프오그램 필름'을 세웠음.
  5. 동화를 요즘 식으로 바꾼 짧은 만화 일곱 편을 만들었음.
  6. 그런데 이 만화들을 사 주기로 한 테네시의 배급사가 먼저 망했음.
  7.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기록에 따르면 제작비는 생각보다 많이 들었고 돈은 작품을 끝내야만 들어왔음.
  8. 월트는 직원 월급을 일부만 주고 나머지는 나중에 주겠다며 버텼음.
  9. 손님을 만나러 갈 멀쩡한 구두가 없어 약속에 못 간 적도 있었다고 함.
  10. 직원들은 하나둘 떠났음.
  11. 월트는 사무실에서 자고, 아래층 식당에서 외상으로 먹고, 일주일에 한 번 기차역에서 10센트를 내고 씻었다고 함.
  12. 보다 못한 형 로이 디즈니(Roy Disney)가 "거기서 나오는 게 좋겠다"고 권했음.
  13. 1923년 8월 회사는 문을 닫았고 그해가 가기 전 파산 절차가 시작됐음.
  14. 스물한 살의 월트는 영화 카메라를 팔아 로스앤젤레스행 기차표를 샀음.
  15. 돈이 없는데도 1등석을 끊었음.
  16. 아내 릴리언 디즈니(Lillian Disney)는 훗날 "월트는 늘 최고를 가져야 했다"고 말했음.
  17. 가방에는 캔자스시티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만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필름이 들어 있었음.
  18. 월트는 "젊을 때 제대로 한번 실패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돌아봤음.
  19. 할리우드에 와서는 만화에 질렸다며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했음.
  20. 영화사에 자리를 얻지 못하자 삼촌 집 차고에 남은 나무와 상자로 만화 작업대를 다시 만들었음.
  21. 판을 바꾼 건 캔자스시티에서 반만 만들고 가져온 그 '앨리스' 필름이었음.
  22. 뉴욕의 배급업자 마거릿 윙클러(Margaret Winkler)가 1923년 10월 15일 전보로 계약을 제안했음.
  23. 월트는 그날 밤 보훈병원에서 결핵을 치료하던 형 로이를 찾아가 함께하자고 했음.
  24. 다음 날인 1923년 10월 16일 로이는 병원에서 나왔고 월트는 앨리스 시리즈 계약서에 서명했음.
  25. 디즈니 수석 기록관은 이 계약서를 "디즈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라고 불렀음.
  26. 앨리스 시리즈는 한 편에 1,500달러로 시작해 1927년까지 이어졌음.
  27. 그다음 만든 캐릭터가 '행운의 토끼 오스왈드'였음.
  28. 1927~1928년 오스왈드 만화 26편을 만들었음.
  29. 오스왈드는 사탕·스텐실·배지로 나온 디즈니의 첫 캐릭터 상품이었음.
  30. 그런데 1928년 3월 윙클러와 결혼해 배급 일을 이어받은 찰스 민츠(Charles Mintz)가 오스왈드와 월트의 애니메이터 절반을 데려갔음.
  31. 오스왈드의 저작권은 배급을 맡은 유니버설에 있었음.
  32. 두 번째 실패였음.
  33. 월트는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새 캐릭터를 떠올렸다고 말해 왔음.
  34. 오랜 동료 애니메이터 어브 아이웍스(Ub Iwerks)가 새 캐릭터의 디자인을 도왔음.
  35. 처음 이름은 '모티머'였는데 릴리언이 너무 거창하다며 '미키'를 권했다고 전해짐.
  36. 1928년 11월 18일 뉴욕 콜로니 극장에서 그림과 소리가 맞게 나오는 첫 만화 '증기선 윌리'가 개봉했음.
  37. 미키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음.
  38. 이번에는 캐릭터가 디즈니 것이었음.
  39. 1929년 12월 16일 형제의 동업은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이라는 회사가 됐음.
  40. 캐릭터 상품도 우연히 시작됐음.
  41. 1929년 뉴욕의 한 호텔 로비에서 어떤 사람이 아이들 연필 공책에 미키를 넣게 해 달라며 300달러를 내밀었음.
  42. 돈이 급했던 월트는 받아들였고 이게 디즈니 캐릭터 사용권 사업의 시작이었음.
  43. 1932년부터는 영업 수완가 케이 케이먼(Kay Kamen)이 17년 동안 디즈니 상품 사용권을 도맡았음.
  44. 같은 1932년 월트는 흑백으로 만들던 만화를 큰돈을 버리고 컬러로 다시 만들었음.
  45. 테크니컬러와 2년 동안 만화 영화에서 이 색 기술을 혼자 쓰는 계약도 맺었음.
  46. 그 만화 '꽃과 나무'는 아카데미 단편 만화상을 받았음.
  47. 그런데 월트는 단편 만화로는 큰돈을 벌지 못했다고 디즈니 공식 기록은 적었음.
  48. 그래서 고른 길이 첫 장편 만화 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였음.
  49. 750명 넘는 화가가 3년 동안 매달렸고 제작비는 140만 달러가 들었음.
  50. 1937년 12월 21일 개봉한 영화는 처음 개봉 때 세계에서 850만 달러를 벌었음.
  51. 아이들이 극장에 10센트를 내고 들어가던 때였음.
  52. 한동안 역대 가장 많이 번 영화였다가 2년쯤 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자리를 내줬음.
  53. 월트는 백설공주로 번 돈으로 버뱅크에 새 스튜디오를 지었고 영화는 그 뒤 여덟 번 다시 극장에 걸렸음.
  54.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스튜디오는 군 교육용 영화를 만들며 몸집을 줄였음.
  55. 전쟁 뒤에도 살림은 한동안 펴지지 않았고 1950년 '신데렐라'와 실사 영화 '보물섬'으로 다시 돈을 벌기 시작했음.
  56. 회사를 마침내 든든하게 만든 건 1955년의 디즈니랜드였다는 게 디즈니 공식 기록의 설명임.
  57. 월트는 딸들을 놀이공원에 데려가면 아이들만 놀고 자기는 벤치에서 팝콘을 먹는 게 아쉬웠다고 함.
  58. 부모와 아이가 함께 노는 곳을 짓겠다며 디자이너들을 자기 돈으로 고용해 구상을 시작했음.
  59. 생명보험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별장을 팔고 여러 회사에서 돈을 받아 애너하임의 오렌지 농장 땅 160에이커를 샀음.
  60. 1955년 7월 17일 1,700만 달러를 들인 디즈니랜드가 문을 열었음.
  61. 월트는 텔레비전 주간 프로그램으로 공사 중인 공원을 미리 보여 주며 손님을 모았음.
  62. 공원에서 들어오는 돈과 캐릭터 상품 사용료가 다음 사업의 밑천이 됐음.
  63. 1966년에는 워런 버핏(Warren Buffett)도 디즈니를 눈여겨봤음.
  64. 버핏은 그때 디즈니의 시가총액이 9,000만 달러가 안 됐는데 디즈니랜드의 새 놀이기구 하나에 1,700만 달러가 들었다고 적었음. 비슷한 글 워런 버핏 1995년 주주서한 (버크셔 해서웨이)
  65. 월트는 1966년 12월 15일 숨졌음.
  66. 숨지기 직전까지 미래 도시 구상 에프코트(EPCOT)를 짜고 있었음.
  67. 형 로이는 동생이 남긴 플로리다 계획을 이어받아 1971년 10월 월트 디즈니 월드를 열었음.
  68. 4억 달러짜리 사업이었는데 문을 열 때 회사에 갚을 빚이 없었다고 디즈니 공식 기록은 적었음.
  69. 로이는 개장 두 달 뒤인 1971년 12월 20일 숨졌음.
  70. 2006년 디즈니는 픽사를 74억 달러에 사들였고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디즈니 최대 개인 주주가 됐음. 비슷한 글 스티브 잡스(Steve Jobs) 2005년 스탠퍼드 졸업 연설 (Stay hungry, stay foolish)
  71. 같은 2006년 빼앗겼던 오스왈드도 78년 만에 유니버설에서 디즈니로 돌아왔음.
  72. 월트는 "이 모든 게 쥐 한 마리에서 시작됐다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음.
  73. 파산한 캔자스시티 회사의 자본금은 1만 5,000달러였고 2025 회계연도 디즈니의 매출은 944억 2,500만 달러였음.
  74. 2026년 7월 29일 디즈니의 발행 주식은 17억 2,669만 주였고 10월 9일 종가 108.05달러를 곱하면 시가총액은 약 1,866억 달러임.

🍿 여담

  1. 본문의 아이웍스는 월트가 열아홉 살 때 처음 차린 회사의 동업자였음.
  2. 1920년 두 사람이 세운 회사 이름은 '아이웍스-디즈니'였는데 '디즈니-아이웍스'는 안경 공장 이름처럼 들려서였다고 디즈니 공식 기록은 적었음.
  3. 1924년 할리우드에 온 아이웍스의 첫 주급 40달러는 월트보다 많았음.
  4. 그는 하루에 그림 700장을 그린 것으로 유명했는데 요즘 숙련된 애니메이터는 일주일에 80~100장을 그린다고 디즈니 공식 기록은 적었음.
  5. 월트는 1946년까지 미키의 목소리를 직접 맡았음.
  6. 1939년 백설공주는 아카데미 특별상으로 큰 오스카 하나와 작은 오스카 일곱 개를 받았고 상은 배우 셜리 템플(Shirley Temple)이 건넸음.
  7. 월트가 백설공주를 처음 떠올린 건 1917년 열다섯 살 신문 배달 소년으로 본 무성 영화에서였음.
  8. 월트의 아내 릴리언은 1987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공연장을 짓는 데 5,000만 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했음.

💰 어떻게 벌었나

캐릭터 → 영화 → 상품·놀이공원

  1. 월트가 판 건 사람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가 나오는 이야기였고, 값은 극장 관객과 상품을 만드는 회사와 놀이공원 손님이 냈음.
  2. 오스왈드를 저작권째 빼앗긴 뒤 만든 미키는 디즈니 것이라 영화가 끝나도 공책과 장난감과 놀이공원에서 계속 돈을 버는 자산이 됐음.
  3. 첫 사용료는 연필 공책 한 가지에 300달러였지만 이 사업은 케이먼이 17년 동안 맡을 만큼 커졌음.
  4. 상품은 남의 공장이 만들고 남의 가게가 팔아 디즈니가 공장을 짓지 않아도 캐릭터가 팔리는 곳이 늘어나 레버리지에 유리했음.
  5. 장편 영화는 한 번 만들면 여러 번 다시 걸 수 있는 자산이라 140만 달러를 들인 백설공주는 처음 개봉 때만 850만 달러를 벌어 새 스튜디오를 지을 돈이 됐음.
  6. 회사 가치는 2026년 10월 9일 기준 약 1,866억 달러임.
  7. 아쉬운 점은 번 돈이 늘 다음 작품으로 들어갔다는 것임.
  8. 단편 만화로는 큰돈을 못 벌었고 디즈니랜드는 생명보험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별장까지 팔아 지었음.

관련 링크

공식 기록(D23·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 16건,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1건, 공시 2건, 시세 1건을 확인해 정리함. 그중 직접 볼 만한 것만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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