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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멍거(Charlie Munger), 변호사에서 버크셔의 설계자가 되기까지

객주19일 전인물해외 0 11
목차 · 5개 칸
  1. 찰리 멍거(Charlie Munger)가 2023년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신고한 버크셔 해서웨이와 코스트코 주식은 2026년 10월 9일 종가로 약 32억 8,000만 달러, 원화로 약 4조 4,000억 원어치로 추산됨.
  2. 시작은 오마하의 한 식료품 가게에서 하루 10시간을 일하고 받은 2달러였음.
  3. 시급 15달러짜리 변호사였던 그의 첫 큰돈은 서른 넘어 직접 설계해 지은 아파트 다섯 곳에서 나왔음.
  4. 멍거는 1924년 1월 1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났음.
  5. 집에서 여섯 블록 떨어진 식료품 가게 '버핏 앤드 선'의 주인은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의 할아버지 어니스트 버핏(Ernest Buffett)이었음.
  6. 버핏은 2025년 추수감사절 편지에서 1940년 여름 멍거가 이 가게에서 하루 10시간에 2달러를 받고 일했다고 적었음. 비슷한 글 워런 버핏 2025년 추수감사절 편지 (버크셔 해서웨이)
  7. 이듬해에는 여섯 살 어린 버핏도 같은 일을 했지만 둘은 1959년까지 서로 만나지 못했음.
  8. 멍거는 미시간대에서 수학을 공부하다 2학년을 마치고 육군 항공대에 들어갔음.
  9. 칼텍에서 기상학을 배워 기상 장교가 됐음.
  10. 전역 뒤에는 학사 학위 없이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갔음.
  11. 1948년 335명 가운데 12명뿐인 우등 졸업생으로 나와 캘리포니아에서 변호사가 됐음.
  12. 그런데 1953년 이혼한 지 얼마 안 돼 아들 테디가 백혈병으로 손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음.
  13. 변호사 일만으로는 돈이 쌓이지 않았음.
  14. 버핏은 2014년 주주서한에서 멍거가 시급 15달러를 받는 변호사였다고 적었음. 비슷한 글 워런 버핏 2014년 주주서한 (버크셔 해서웨이)
  15. 그래서 멍거는 본업 밖에서 돈을 벌 길을 찾았음.
  16. 첫 사업은 고객이자 친구인 오티스 부스(Otis Booth)와 칼텍 근처 땅에 아파트를 지은 일이었음.
  17. 10만 달러를 넣어 30만 달러를 남겼다고 멍거의 강연과 삶을 엮은 책 『Poor Charlie's Almanack』은 적었음.
  18. 번 돈은 꺼내 쓰지 않고 다음 부동산 사업에 다시 넣어 사업 규모를 키웠음.
  19. 1964년 부동산을 그만둘 때 이렇게 모은 돈이 140만 달러였음.
  20. 버핏은 멍거가 30대에 로스앤젤레스 근처에 아파트 다섯 곳을 직접 설계해 지으며 처음 큰돈을 벌었다고 적었음.
  21. 1962년 2월에는 동료 변호사 넷과 새 로펌을 세웠음.
  22. 이 로펌이 지금의 '멍거 톨스 앤 올슨'임.
  23. 하지만 멍거는 3년 만인 1965년에 현역 변호사를 그만뒀음.
  24. 떠나면서 로펌에 쌓인 자기 몫은 받지 않고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젊은 동료 프레드 워더(Fred Warder)의 가족에게 가게 했음.
  25. 법을 떠나게 된 계기는 몇 해 전 오마하에서의 저녁 한 끼였음.
  26. 1959년 멍거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유산을 정리하러 오마하에 돌아갔음.
  27. 어린 시절 친구들이 연 저녁 자리에 워런 버핏이 와 있었음.
  28. 버핏은 그때 자기가 28살, 멍거가 35살이었다고 적었음.
  29. 둘을 이어 준 건 멍거 집안과 가까운 의사 에드 데이비스(Ed Davis)였음.
  30. 데이비스 부부는 몇 해 전 평생 모은 돈의 큰 몫인 10만 달러를 버핏에게 맡겼음.
  31. 까닭을 묻자 데이비스는 버핏이 찰리 멍거를 닮아서라고 답했다고 『Poor Charlie's Almanack』은 적었음.
  32. 버핏은 변호사 일이 취미로는 좋아도 사업으로는 자기 일만 못하다고 멍거에게 말했음.
  33.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간 뒤에도 둘은 전화와 길게는 아홉 장짜리 편지로 이야기를 이어 갔음.
  34. 계약서 없이 악수로 시작한 관계였다고 『Poor Charlie's Almanack』은 적었음.
  35. 1962년 멍거는 잭 휠러(Jack Wheeler)와 투자 조합 '휠러 멍거'를 차렸음.
  36. 투자 조합은 몇 사람의 돈을 모아 운용자가 굴리는 작은 펀드임.
  37. 첫 11년은 한 해도 잃지 않고 수수료를 떼기 전 기준으로 연 28.3%씩 불었음.
  38. 같은 기간 다우지수는 연 6.7%였음.
  39. 그런데 1973년에 31.9%, 1974년에 31.5%를 잃었음.
  40. 가장 많이 가진 블루칩 스탬프와 뉴아메리카 펀드가 크게 떨어진 탓이었음.
  41. 1975년에 73.2%를 되찾아 14년 성적은 수수료를 떼기 전 연 19.8%로 끝났음.
  42. 투자자에게 돌아간 몫은 연 13.7%였고 같은 14년 다우지수는 연 5%였음.
  43. 이 일을 겪고 멍거는 남의 돈을 직접 굴리지 않기로 했음.
  44. 조합을 정리할 때 투자자들은 블루칩 스탬프와 다이버시파이드 리테일링 주식을 나눠 받았음.
  45. 이 주식은 나중에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으로 바뀌었음.
  46. 그사이 버핏은 1965년 섬유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권을 샀음.
  47. 멍거는 이게 멍청한 결정이었다고 버핏에게 곧바로 말했음. 비슷한 글 워런 버핏 2023년 주주서한 (버크셔 해서웨이)
  48. 버핏은 당시 멍거가 버크셔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적었음.
  49. 그래도 멍거는 고칠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했음.
  50. "그저 그런 회사를 헐값에 사는 건 그만두고 훌륭한 회사를 적정한 값에 사라"는 조언이었음.
  51. 버핏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이 가르친 방식을 버리라는 말이었음.
  52. 버핏은 그 방식을 '담배꽁초 투자'라고 불렀음.
  53. 길에 버려진 꽁초로 공짜 한 모금을 빨듯 망해 가는 회사를 싸게 사서 마지막 이익만 챙기는 방식임.
  54. 판을 바꾼 건 1972년의 씨즈캔디였음.
  55. 씨즈캔디는 미국 서부에서 상자 초콜릿을 만들어 파는 회사임.
  56. 순유형자산 800만 달러로 한 해 세전 이익 약 400만 달러를 내고 있었음.
  57. 순유형자산은 공장·재고처럼 손에 잡히는 재산에서 빚을 뺀 값임.
  58. 파는 쪽은 3,000만 달러를 불렀고 멍거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봤음.
  59. 버핏은 순유형자산의 세 배인 2,500만 달러도 망설여지는 값이라 그 이상은 못 낸다고 버텼음.
  60. 버핏은 자기의 조심성이 좋은 거래를 날릴 뻔했다고 적었음.
  61. 다행히 파는 쪽이 2,500만 달러를 받아들였음.
  62. 씨즈캔디를 산 회사는 버핏과 멍거와 버크셔가 함께 큰 지분을 가진 블루칩 스탬프였음.
  63. 그 뒤 2014년까지 씨즈캔디가 번 세전 이익은 19억 달러였음.
  64. 그동안 더 들어간 투자는 4,000만 달러뿐이었음.
  65. 버핏은 이 회사를 지켜보며 강한 브랜드의 가치를 배웠다고 적었음.
  66. 멍거는 1976년 블루칩 스탬프 회장, 1978년 버크셔 부회장이 됐음.
  67. 블루칩 스탬프는 1983년 버크셔에 합쳐졌음. 비슷한 글 워런 버핏 1983년 주주서한 (버크셔 해서웨이)
  68. 버크셔 부회장 연봉은 25년 넘게 10만 달러 그대로였음.
  69. 버핏은 멍거를 지금 버크셔의 '설계자', 자기를 그 설계대로 짓는 '현장 감독'이라고 불렀음.
  70. 멍거도 버크셔 50주년에 자기 눈으로 본 성공 비결을 따로 적었음. 비슷한 글 찰리 멍거(Charlie Munger) 버크셔 해서웨이 50주년 편지 (2014년 연차보고서)
  71. 버크셔 밖에서도 회사 세 곳에 이름을 걸었음.
  72. 첫째는 블루칩 스탬프가 거느린 보험·철강 유통 회사 웨스코 파이낸셜이었음.
  73. 웨스코 위임장에 따르면 멍거는 1984년부터 회장 겸 최고경영자였고 2011년 버크셔가 남은 지분을 사들여 합칠 때도 그 자리에 있었음.
  74. 위임장은 주주총회 전에 회사가 이사 후보와 주요 주주를 알리는 미국 공시임.
  75. 둘째는 로스앤젤레스의 법률 신문사 데일리 저널이었음.
  76. 멍거는 1977년부터 이 회사 회장이었고 보수는 받지 않았음.
  77. 2022년 3월 회장 자리를 넘기고 이사로 남았음.
  78. 2022년 12월 위임장에서 멍거 본인 몫은 4만 6,280주로 3.36%였음.
  79. 멍거 가족을 위한 신탁 몫 13만 1,297주(9.53%)는 따로 있었음.
  80. 셋째는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였고 멍거는 1997년부터 이사였음.
  81. 그런데 멍거를 널리 알린 건 투자 성적보다 강연이었음.
  82. 1994년 4월 14일 USC 경영대학원 수업에서 '세상을 사는 기초 지혜'라는 강연을 했음.
  83. 여기서 꺼낸 말이 '정신 모형'이었음.
  84. 정신 모형은 여러 학문의 핵심 원리를 도구처럼 머릿속에 갖춰 두고 문제마다 꺼내 쓰는 생각의 틀임.
  85. 멍거는 "경험을 머릿속 모형들의 격자에 걸어 두어야 한다"고 말했음.
  86. 망치만 든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는 말도 이 강연에 나옴.
  87. 또 하나 유명한 강연은 '인간 오판의 심리학'임.
  88. 사람이 판단을 그르치는 까닭을 심리학으로 풀어 25가지로 정리한 강연임.
  89. 1992년 칼텍, 1994년 하버드 교수 클럽, 1995년 보스턴에서 한 강연 세 편이 바탕임.
  90. 멍거는 2005년 이 셋을 하나로 묶으며 내용을 크게 고쳐 썼음.
  91. 이 강연들은 2005년 나온 『Poor Charlie's Almanack』에 실려 지금은 출판사 스트라이프 프레스의 온라인판으로 누구나 읽을 수 있음.
  92. 멍거는 2023년 11월 28일 아침 캘리포니아의 한 병원에서 숨졌음.
  93. 100번째 생일을 33일 앞둔 날이었음.
  94. 버크셔는 같은 날 낸 보도자료에서 가족이 멍거가 남긴 지시대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고 밝혔음.
  95. 그 뒤 멍거 이름으로 낸 주식 신고는 없음(2026년 10월 11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공시 시스템 기준).
  96. 데일리 저널 쪽에서는 남은 주식이 흩어지는 과정이 공시로 드러났음.
  97. 2023년 12월 데일리 저널 위임장에서 멍거 본인 몫은 주요 주주 표에서 빠졌음.
  98. 가족 신탁 몫은 『Poor Charlie's Almanack』을 엮은 피터 카우프만(Peter Kaufman)이 수탁자로 맡고 있었음.
  99. 수탁자는 신탁에 맡긴 재산을 주인 대신 관리하는 사람임.
  100. 이 신탁은 2025년 12월 9~11일 1만 2,121주를 1주 465~480달러에 팔았음.
  101. 2026년 1월 16일 카우프만은 남은 11만 9,176주를 수익자에게 나눠 주고 신탁을 닫겠다고 신고했음.
  102. 3월 6일까지 5만 9,601주가 수익자에게 넘어갔음.
  103. 2026년 7월 위임장의 주요 주주 표에는 멍거 쪽 이름이 하나도 없음.
  104. 그럼 멍거가 남긴 상장 주식 가치를 추산해봄.
  105. 2023년 3월 버크셔 위임장에서 멍거의 A주는 4,170주로 0.7%였고 버핏은 22만 7,416주로 38.5%였음.
  106. A주는 한 주가 B주 1,500주와 같은 버크셔의 비싼 주식임.
  107. 멍거는 그 뒤 두 번에 걸쳐 A주 137주를 가족 재단과 헌팅턴 도서관에 기부했다고 신고했음.
  108. 마지막 버크셔 신고인 2023년 10월 5일 기준으로 A주 4,033주와 B주 643주가 남았음.
  109. A주 4,033주에 2026년 10월 9일 종가 77만 4,295달러를 곱하면 약 31억 2,000만 달러임.
  110. 마지막 코스트코 신고인 2023년 10월 22일 기준 직접 가진 코스트코 주식은 16만 8,104주였음.
  111. 2026년 10월 9일 종가 946.92달러를 곱하면 약 1억 5,900만 달러임.
  112. B주 643주는 약 33만 달러라 합계에 거의 영향이 없음.
  113. 모두 더하면 약 32억 8,000만 달러이고, 원화로는 약 4조 4,000억 원임(1달러 1,341.49원, 2026년 10월 9일 유럽중앙은행 기준).
  114. 다만 이 주식은 이제 유족과 재단의 몫인데 누구에게 얼마씩 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음.
  115. 데일리 저널 주식과 부동산, 다른 투자, 상속세는 이 추산에 넣지 않았음.

휠러 멍거 투자 조합 숫자로 보기 (『Poor Charlie's Almanack』, 연 수익률 %)

기간 조합(수수료 전) 투자자 몫 다우지수
1962~1972 (11년) 28.3 20.0 6.7
1973 -31.9 - -
1974 -31.5 - -
1975 73.2 - -
1962~1975 (14년) 19.8 13.7 5.0

🍿 여담

  1. 본문의 버핏 할아버지 가게에는 별난 규칙이 하나 있었음.
  2. 1930년대 새로 생긴 사회보장 제도를 못마땅해한 어니스트 버핏은 일하는 아이들에게 일이 끝날 때마다 그 세금 몫으로 1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내게 했다고 『Poor Charlie's Almanack』은 적었음.
  3. 버핏은 2006년 주주서한에서 멍거와 함께 산 블루칩 스탬프의 그해 매출이 2만 5,920달러였다며 0을 빼먹은 게 아니라고 적었음. 비슷한 글 워런 버핏 2006년 주주서한 (버크셔 해서웨이)
  4. 아파트로 첫 큰돈을 번 멍거가 평생 건축을 좋아했다며 버핏은 2014년 서한에서 그가 스탠퍼드대와 미시간대의 큰 기숙사 단지를 직접 설계했다고 적었음.
  5. 2022년 멍거가 회사에 기부한 데일리 저널 주식 3,720주는 회사가 경영진에게 주식을 나눠 주는 제도를 처음 만드는 밑천이 됐음.
  6. 데일리 저널은 직원이 아닌 이사에게 해마다 5,000달러를 줬는데 2023년 위임장의 보수 표에서 멍거 칸만 0달러였음.

💰 어떻게 벌었나

시급 → 아파트 → 좋은 회사 지분

  1. 멍거가 처음 판 건 변호사로서의 시간이었고, 값은 시간당 15달러를 내는 의뢰인이 냈음.
  2. 시간은 쌓이지 않아서 그는 번 돈을 아파트에 넣었고, 그 아파트가 다시 다음 아파트를 짓는 돈이 됐음.
  3. 10만 달러로 30만 달러를 남긴 첫 사업에서 시작해 1964년까지 부동산으로만 140만 달러를 모았음.
  4. 그다음 판 건 고르는 눈이었고, 투자 조합에서 수수료 전 연 19.8%를 내 투자자에게 13.7%를 돌려준 차이가 운용자 몫으로 남았음.
  5. 버크셔 시절의 레버리지는 돈을 더 넣지 않아도 이익이 커지는 회사였고, 씨즈캔디는 4,000만 달러만 더 들이고 세전 19억 달러를 벌어 줬음.
  6. 공장과 가게를 늘려야 매출이 느는 회사라면 2,500만 달러에 산 회사가 이렇게 벌기 어려움.
  7. 남긴 상장 주식은 2026년 10월 9일 기준 약 32억 8,000만 달러로 추산됨.
  8. 아쉬운 점은 지분 크기임.
  9. 버크셔를 설계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2023년 위임장에서 멍거의 A주는 0.7%로 버핏의 38.5%에 크게 못 미쳤음.

관련 링크

버크셔 주주서한 4건, 공시 14건(버크셔·코스트코·데일리 저널·웨스코), 본인 강연집 1건, 공식 발표 2건을 확인해 정리함. 그중 직접 볼 만한 것만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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